총선 소용돌이가 지나가자 이라크 추가파병이 다시 논란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이 파병 철회를 주장하자, 열린우리당도 파병을 재검토할 듯한 자세다. 그러나 진정성은 아직 의심스럽다. 사생결단한 총선 싸움을 도운 시민운동세력이 탄핵 철회를 함께 제기한 마당에, 파병 철회만 정색하고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흥미로운 것은 일자리 없는 제대군인 파병론을 꺼냈다가 여론의 질타를 당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파병 재검토를 언급한 것이다. 무도한 발언으로 손상된 체면을 만회하려는 것인지, 올바른 국가적 선택을 진정 고민해야할 도리를 깨친 지는 지켜볼 일이다. 누굴 꼬집어 흉보려는 게 아니라, 이라크 상황 악화에 발단이 된 제대군인 용병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미군의 무차별 공격과 봉쇄로 뉴스의 중심이 된 팔루자 사태는 수니파 저항세력이 미국인 용병 4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데서 비롯됐다. 점령당국을 추종하는 언론은 이들을 보안계약요원(security contractors)으로 부르지만, 비판적 언론은 직설적으로 용병(mercenaries)이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대개 미국 유럽 남아공 등의 특수부대출신 제대군인이다. 현재 1만8,000 명이 미 국방부의 하청용역을 맡은 해리버튼 등 미국 기업에 고용돼 미군시설 경비와 요인 경호, 군수물자 호송 등을 맡고 있다.
정규군보다 훨씬 잘 훈련되고 전투경험도 많은 이들은 미군을 대신해 저항세력의 공격을 일선에서 감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2주 사이 미군 전사자보다 많은 80여 명이 사망, 미국이 전쟁도 아웃소싱한 덕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용병 활용은 제국주의 영국이 식민지 경략에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선례와 닮았다. 병력부족을 메우는 것보다, 정규군이 저항세력과 맞닥뜨리는 것을 줄여 점령통치를 평온하게 보이게 하려는 목적이다. 용병 희생은 거의 공개되지 않아 미국 여론에도 영향이 없다.
저항세력이 미국 용병을 유난히 잔인하게 살해, 공개한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 저항세력에게 점령군 용병은 한말 일제 침략의 앞잡이로 나선 일본 낭인 무리 같은 존재다. 미군 주력이 잘 방어된 기지에 머물며 점령통치 정착을 서두는 상황에서, 저항세력은 결연한 저항의지를 안팎에 알리기 위해 미국 용병을 표적 삼은 것이다. 여기에 맞서 미군은 인명살상용 대지공격기 AC-135까지 동원해 팔루자 시를 무차별 공격, 부녀자와 어린이 200여명을 포함해 700명을 죽였다. 대량학살이란 비난이 쏟아진 연유다.
미국이 팔루자를 유린한 것은 이런 저항의지를 꺾어 민족해방투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한 집단응징, 전형적 테러 전술로 간주된다. 그러나 팔루자 사태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심는다고 떠드는 점령통치가 이라크 민중의 뜻과 이익과는 무관한 것임을 분명하게 확인시켰다. 애초 허울뿐인 주권이양으로 점령통치의 성격이 바뀔 수 없다. 전쟁 명분조차 거짓으로 드러난 지금, 그 목적이 석유 패권 확보임을 부정하는 것은 부질없다.
미국은 이라크 장악을 넘어 사우디의 반미 격변 등에 대비, 이라크를 지역 중심기지로 만들고 있다. 바그다드에 3,000명이 일할 대사관을 설치하고 10만 병력을 수용하는 영구기지를 구축, 이라크군 통제권까지 계속 행사한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부와 파병론자들이 이라크 평화와 재건 지원을 되뇌는 것은 공허하다. 국민적 공감을 얻는데 필수적인 확고한 명분과 전략적 목표는 제시하지 못한 채, 사태 흐름에 따라 안팎의 눈치만 살피는 것은 기회주의적이다. 그게 외교 전술이라면 가상하지만, 아무래도 이 정부의 철학 부재와 위선적 면모를 상징하는 듯 한 것이 서글프다. 국익을 내세워 부도덕한 전쟁에 끼어 들면서, 안으로만 도덕성을 떠드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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