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를 30여년 지배해 온 '3김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다. 19일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은막 뒤로 사라진 뒤 3김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아 있었다. 김 총재는 이날 마포당사에서 "노병은 죽진 않지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다 태우고 재가 됐다"고 자신의 굴곡진 정치 역정을 술회했다.이번 총선에서 자민련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서 한국 정치사상 첫 국회의원 10선 고지 등정을 노렸던 그였지만 결국 도도한 시대 흐름 앞에 무릎을 꿇고 쓸쓸히 정계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5·16 쿠데타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던 그가 40여년간의 정치인생을 4·19 혁명 44주년 기념일에 마감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5세 때인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 한국 정치사 전면에 나선 그는 국무총리, 집권당 총재·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걸어왔다. 1979년 10·26 이후 DJ·YS와 함께 정치규제에 묶여 11, 1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한 그는 민주화 요구가 거셌던 8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듬해인 88년 13대 총선 때 신민주공화당을 이끌어 고향인 충청권을 석권,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뒤 내친 김에 90년 3당 합당까지 감행, 다시 한 번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때인 95년 YS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JP는 민자당 탈당 및 자민련 창당으로 정면승부를 걸어 96년 총선에서 '핫바지론'으로 또다시 충청권 돌풍을 일으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데 성공한다. 97년에는 DJP 연대로 김대중 정권을 공동 탄생시켜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올랐지만 2001년 DJ와 결별하고 야당으로 변신했다.
그 이후 그의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0년 16대 총선,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하고 16대 대선 때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지난 해 10월 모처럼 충청지역 기초단체장 재·보선에서 승리, 17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복원을 꿈꿨지만 탄핵 역풍으로 치명타를 맞으며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결정적일 때 망설이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쫓았던 JP. 항상 정권의 2인자 행보를 밟아왔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처럼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을 미처 가지 못한 채 스스로 정치 인생을 접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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