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처음 구경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연도를 계산하니 열 두 살 때인 1967년의 일이다. 우리반의 길주 형이 월남에 갔다 왔다. 그때 월남에 대해서 우리가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바나나였다. 대체 그것은 어떤 나무에서 열릴까. 나는 길주 형이 월남에서 돌아오며 바나나라도 가져올 줄 알았는데, 그것은 보관이 힘들어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길주가 자기 형이 월남에서 가져온 것 중에서 엄지손가락만한 국방색 봉지 몇 개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복불복'이었다. 운이 좋으면 설탕봉지가, 운이 나쁘면 쓰고 텁텁한, 생긴 것과 냄새도 꼭 나무껍질을 바싹 구워 갈아놓은 것 같은 가루가 왔다. 지금 보니 미군들에게 보급되던 인스턴트 커피였던 것 같은데, 커피와 설탕이 한데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봉지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게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미국 놈들은 이런 걸 왜 먹는지 참 알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짧은 글 하나를 쓰는데도 두 잔을 마신다. 그러지 않고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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