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에 대한 호기심이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식을 줄 모른다. 하지만 수수께끼는 아직도 너무나 많다. 공룡이 백악기가 끝나면서 멸종해 화석으로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0여년간 수많은 공룡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화석 발굴보다 공룡의 계통발생학적인 추적에 관심이 모아진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공룡의 발자취를 따라,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공룡의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발자국만 보고도 공룡 종류 구분 가능
지금으로부터 약 1억년 전이었어. 나는 친구들과 함께 호수로 향해 걸어갔지. 우린 갈증이 날 때마다 종종 호수로 가서 물을 마시곤 했어. 호숫가에 우리 일곱이 걸었던 발자국이 나란히 찍힌 걸 보고는 무척 즐거워했지. 그게 1억년이 지난 후까지 남아 있을 줄은 우리도 정말 몰랐어.
우리의 발자국이 발견된 곳은 지금의 경남 고성이란 곳이야. 발자국의 방향이 엇갈리지 않고 한 곳으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격이 일정하고 찍힌 깊이까지 똑같으니까 당연히 같은 시간에 지나갔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지.
내가 누구냐고? 맞았어. 난 공룡이야. 공룡 중에서도 조각류에 속하지. 발톱이 뭉툭하고 발자국의 폭과 길이가 비슷한 게 조각류의 특징이야. 거기에 비해 육식 공룡인 수각류는 발톱 끝이 날카롭고 발자국의 폭보다 길이 방향이 더 길지.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기 위해 네 발로 걸었던 용각류들은 당연히 발자국도 네 개씩 찍히게 되는데, 뒷발자국이 앞발자국보다 훨씬 커. 이렇게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발자국만 보고도 육식 공룡인지 초식 공룡인지 종류를 구분하곤 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성공한 동물'이라고 말하지. 그럴 만도 한 게 우린 지구상에서 1억6,000만년 동안이나 살았으니까 말야. 인류의 역사와 비교해 봐도 무려 40배 가까이 오래 생존한 셈이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나타나 6,500만년 전인 백악기 말기까지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나 다름없었어.
우리는 파충류에 속하지만 악어나 도마뱀과는 달리 똑바른 다리를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빠르게 뛰어다닐 수 있고, 자기 몸무게를 지탱하기 편해 몸집도 엄청 커졌지. 육식 공룡 중 빠르게 달리는 것은 시속 60∼70㎞의 속도까지 낼 수 있었대.
다른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그렇게 빨리 달렸는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의 구성 비율이야. 대부분의 파충류는 육식과 초식의 구성 비율이 각각 50%인데 비해, 공룡은 육식의 구성비가 3∼5%밖에 되지 않아. 이 수치는 포유류와 비슷한 구성 비율로, 아주 의미있는 추측을 해볼 수 있어.
포유류와 구성 비율 같은 육식공룡
도마뱀이 따뜻한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 건 체온을 높이기 위해서야. 피가 일정한 온도까지 올라가야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지. 이처럼 냉혈 동물인 파충류는 신진대사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먹이를 자주 먹지 않아도 돼. 한번 먹이를 먹으면 며칠씩 굶어도 상관없어.
이와 반대로 온혈동물은 항상 일정한 자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이를 수시로 먹어야 하지. 항상 먹이를 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셈이야. 초식 동물은 그런 먹이의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지만, 사냥을 해야 먹이를 얻을 수 있는 육식 온혈 동물은 그렇지 않지.
아프리카에 사는 야생동물 중 육식동물의 구성 비율이 5% 남짓인 것도 먹이인 초식동물이 많이 분포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파충류인 공룡의 구성비가 그것과 같다는 것은 혹시 공룡도 온혈동물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
또한 뼈를 잘라서 그 단면을 보면 냉혈동물과 온혈동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구멍이 많은 뼈는 온혈이고 구멍이 별로 없는 뼈는 냉혈이지. 그건 온혈동물의 혈관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런데 육식 공룡의 뼈는 구멍이 많은 반면, 초식 공룡의 뼈는 파충류처럼 구멍이 별로 없었어. 따라서 그것만 가지고 우리 전체가 냉혈동물인지 온혈동물인지 단정할 수는 없겠지.
하늘을 날게 된 공룡
육식 공룡은 뼈 속이 거의 비어 있는데, 그건 사냥할 때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끔 진화한 덕분이야. 하늘을 나는 새도 몸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뼈 속이 텅 비어 있지. 따라서 공룡학자들은 우리를 연구하면서 차츰 공룡과 새와의 관계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었어. 공룡과 새의 공통점은 무려 100가지가 넘는데, 쉬운 예로 닭의 다리에 비늘 같은 피부가 남아 있는 건 예전에 파충류였다는 흔적이 되는 셈이지.
또 하나 아주 중요한 단서는 차골(叉骨)이라는 뼈야. 사람들이 삼계탕을 먹을 때 닭의 목 부위에서 볼 수 있는 Y자형의 뼈가 바로 그거야. 차골은 조류에서만 나타나는 뼈로, 사람의 경우 쇄골에 해당하지. 그런데 공룡에서도 조류와 똑같은 차골이 발견되고 있어. 예전에 사람의 쇄골처럼 양쪽으로 떨어져 있던 차골이 진화하면서 차츰 새처럼 Y자로 붙게 된 거지.
공룡이 새의 조상이라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증거는 깃털이야. 깃털은 새의 아주 중요한 특징인데, 같은 깃털이라도 그 모양이 대칭이냐 비대칭이냐에 따라 많이 틀려. 대칭 모양의 깃털은 양력(물체를 들어올리는 힘)을 받을 수 없는 형태이고, 새가 가진 비대칭 깃털이라야 하늘을 날 수 있지. 그런데 공룡의 화석 중 새처럼 비대칭 깃털을 가진 개체가 발견되고 있어.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로 새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거의 확실해졌지. 하늘을 날 수 없는 공룡들은 중생대를 끝으로 멸종됐지만, 하늘을 날게 된 공룡들은 조류로 진화해서 아직도 지구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셈이야.
한반도는 우리가 살았던 중생대의 지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더구나 공룡이 발견될 수 있는 육성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어서 화석의 발굴 조건이 갖춰진 곳이지. 그런데도 발자국 화석만 많이 발견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의 뼈 화석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숨어 있는 우리를 찾아내 공룡에 대한 새로운 비밀이 많이 풀리길 바라며, 그럼 이만 안녕.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연세대 지질학과 졸업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공룡학 박사
▲미국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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