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가 쏟아내는 자체브랜드(PB·Private Brand)) 상품이 중소 납품업체들을 고사 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유통업체가 부당반품, 판매촉진 비용 전가 등의 횡포를 부리는 바람에 중소 납품업체 고유 브랜드가 아예 사라질 위험도 크다.
PB상품 출시 러시
PB상품이란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에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물건을 주문한 뒤 유통업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상품. 장기간 대량 주문생산 하기 때문에 물건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할인점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에는 이플러스(우유), 이베이직(의류) 등의 브랜드로 3,500여 품목이 판매되고 있다. 롯데마트도 위드원(의류), 와이즐렉(화장지, 세제 등) 등의 브랜드로 올해 말까지 식품·가전제품 700여 품목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홈플러스쌀, 홈플러스돼지고기 등의 PB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부당반품 많아 횡포
PB상품의 판매관리는 당연히 유통업체가 책임져야 하지만 유통업체들은 소비자 클레임, 판매부진, 진열 중 파손 등의 이유를 들어 제품을 납품업체에 돌려보내 재고부담을 떠넘기는 불공정행위를 버젓이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2002년 한 해만 이마트가 141개 업체에 18억원치 상당의 PB상품을 반품한 것을 비롯해,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부분의 대형 유통업체가 불공정 반품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판매촉진을 위한 증정품 비용을 납품업체가 물게 하고, 매장 벽면 상품광고 비용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PB상품 판매 도우미, 브랜드 디자인제작 비용까지 납품업체가 떠맡는 경우가 많다"며 "유통망이 따로 없는 납품업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유통업체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소 브랜드 사멸 위기
PB상품이 많아지면서 인지도가 낮은 중소 납품업체의 고유 브랜드가 아예 없어질 소지도 많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업체는 자체 생존력이 있어 PB상품을 거의 만들지 않지만 자체 홍보·판촉 능력이 미약한 중소 제조업체로서는 PB상품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PB상품은 단기적으로 중소업체가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PB상품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중소업체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한 유제품 납품업체 관계자는 "단기 이익만 보고 PB상품에 매달리는 건 중소업체로서는 자살행위"라며 "중소업체들이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유통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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