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읽은 책은 미래의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대입논술고사 실시 이후 청소년 독서와 독서 지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다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1998년부터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을 조직, 청소년 독서운동을 펼쳐온 허병두 대표에게 그 해답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독서 지도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학부모와 교사들 모두 제대로 독서교육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올바른 방향설정과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방법 제시가 더욱 필요하다.
그럴 때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피터 레이놀스가 쓰고 그린 '점'(문학동네 발행·사진)이다. 지난해 말 읽고는 요즘도 가방속에 늘 넣고 다니는 책이기도 하다.
베티는 미술시간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다. 낙담하는 베티에게 선생님은 감탄하는 말을 건넨다. "우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베티는 자기의 빈 도화지를 보며 놀리는 거라 생각하고 벌컥 화를 낸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엇이라도 해 보라며 베티에게 나직하게 권유한다. 베티는 화를 못 참고 도화지 위에 힘껏 연필을 내리꽂는다. 선생님은 베티가 내민 도화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한다.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일주일 후 베티의 그림은 액자에 담겨 걸린다. 이를 본 베티는 더 훌륭한 그림을 그리겠다며 열심히 갖가지 색깔, 온갖 크기의 점들을 그린다. 학교 전시회에서 베티의 점 그림들은 대단한 인기를 모은다. 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베티에게 말을 건넨다. "나도 누나처럼 잘 그렸으면 좋겠어." 베티는 아이를 격려한다. "너도 할 수 있어." 베티는 아이에게 도화지를 주고, 아이가 그린 비뚤비뚤한 선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말한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최근 이렇게 감동적인 책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교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래도록 깨닫게 해준다. 아, 이런 선생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베티가 부럽고 다시 이런 책을 쓴 저자가 부러워진다. 짧은 몇 쪽의 종이와 그림만으로 이렇게 많은 생각과 느낌을 전해 주다니! 책의 유용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울러 학부모와 교사가 갖고 다니며 읽을 책을 몇 권 소개한다. 우선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양철북)와 같이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게 교육현실을 드러내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과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상석, 자인), '에스메이의 일기'(에스메이 코델, 세종서적) 등이 좋다. 여기에 캐나다 작가 가브리엘 루아가 자신의 교사체험을 녹여 쓴 감동적인 소설집 '내 생애의 아이들'(현대문학). '우리들 사이' 시리즈로 나온 '교사와 학생 사이'(하임 기너트, 양철북), '부모와 십대 사이' '부모와 학생 사이'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한 교사론'(이상 고병헌 송순재 황덕명, 내일을여는책), 자유교육의 선구자인 프란시스코 페레의 평전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우물이있는집)를 차례로 읽으면 좋겠다.
부모와 교사는 언제나 그 스스로 좋은 책이 돼야 한다.
/허병두·책따세 대표·숭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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