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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최순우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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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최순우 옛집

입력
2004.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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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박물관인으로 살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이 보수되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서울 성북동의 이 한옥은 1920년대 건축이다. 120평 대지에 본채와 바깥채로 나눠진 집이 호화롭지는 않지만 기품이 단아하다. 혜곡이 읽던 책들은 모두 옮겨지고 사방탁자들만 남아 있다. 대청 현판들은 낡아서 더 운치가 깊어 보인다. 추사와 단원 등 조선시대 명필의 글씨로 된 귀한 현판들이다. 앞뜰에는 마른 대나무 잎이 두런거리고, 뒤뜰에는 산수유 꽃잎이 시나브로 지고 있었다. 도심을 겨우 벗어난 한가함과 고요가 흐르는데, 한편에는 매화와 자목련이 흐드러졌다. 옛 선비의 삶이 대체로 이렇게 적요했으리라.■ 혜곡은 1950년대부터 84년 타계할 때까지 이 집에 살며 도자기와 목공예, 고건축, 그림 등에 관해 많은 글을 썼다. 이 집은 그의 사후 한때 재개발로 헐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요행이 문화유산 보전운동 단체인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알려져 보존된 것이다. 이제 '시민 문화재 1호'로 거듭나게 됐으니 여러 모로 뜻 깊다. 박물관인으로서 혜곡은 깊은 심미안으로 선조들의 문화유산에서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해석했다. '한국인 미의식의 특징은 무엇이며, 다른 민족의 미의식과 어떻게 다른가.' 단순해 보이지만 본질적이고 근원적이며, 누군가 반드시 답을 찾아내야 할 물음이었다.

■ 조선의 미를 말할 때, 우리는 혜곡에 앞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한 뛰어난 일본학자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조선의 역사는 고뇌의 역사이며, 조선예술의 미는 비애의 미라고 보았다. <중국 예술은 의지의 예술이며, 일본은 정취의 예술이다. 그 사이에서 숙명적으로 비애를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조선의> 조선민족은 형태나 색채가 아닌 선(線)에 마음을 의탁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미학은 요즘 한국 학자들에 의해 역사적 비극성에 너무 천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조선이 예술에 의해 동양문화 속에서 탁월한 위치를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을 확신한 미학자였다.

■ 혜곡이 도달한 한국의 미는 명문으로 가득한 선집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대략 엿볼 수 있다. <무리하지 않는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소박한 호젓한 그리움이 깃들인 수다스럽지 않은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 그것은 '완결성 추구보다는 자유와 여백의 미의식'으로 바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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