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승래(苦盡勝來)'. 기다림의 끝은 통쾌한 완승이었다.'코리안 특급' 박찬호(31·텍사스)가 올 시즌 두 번의 패배 끝에 첫 승을 따냈다. 한점도 내주지 않은 철벽 투구였다. 2001년 7월19일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선발 완봉승을 거둔 이래 무실점 승리투수가 된 것은 33개월 만의 경사다.
박찬호는 17일(한국시각) 시애틀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5탈삼진 8안타 무실점으로 팀의 5―0 완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4월12일 시애틀전 승리 이후 1년 5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1승2패를 기록하며 방어율도 3.92(종전 5.93)로 낮췄다.
노련한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인 한판이었다. 볼넷 3개와 몸에 맞는 공 1개, 안타도 8개나 내주며 매회 주자를 내보냈지만 고비마다 최고구속 153㎞짜리 강속구와 현란한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아내 시애틀 타선을 유린했다.
2회에 2루타 등 2안타와 몸에 맞는 공 1개를 허용한 박찬호는 시애틀의 도루 실패가 겹쳐 무실점으로 위기를 넘긴 뒤 5회 1사 1, 2루에서 라울 아비네스를 헛스윙 삼진, 리치 오릴리아를 좌익수 플라이로 요리하며 최대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한일 투타대결도 승리했다. 박찬호는 스즈키 이치로를 중견수 플라이, 파울 플라이, 1루수 땅볼, 유격수 땅볼 등 4차례 모두 범타로 막아냈다. 오랜만에 화력을 뿜은 타선의 맹공도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텍사스는 1회 행크 블레이락의 1점 홈런, 2회 랜스 닉스의 2점 홈런으로 일찌감치 5―0으로 앞서갔다.
박찬호에 이어 8회부터 등판한 카를로스 알만사도 시애틀 공격라인을 잘 저지한 덕에 텍사스는 5―0 완봉승을 거두고 2연승을 달리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6승5패)에 올랐다.
지난 두 차례 등판에서 호투하고도 "운이 나빠 졌다"고 했던 박찬호는 이날 완승 뒤에 "승운이 따랐다"며 덤덤히 말했다. 그는 "몸쪽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데 애를 먹는 등 집중력은 전 경기보다 떨어졌다"면서도 "팀 타선이 도와줬고 다행히 후반으로 갈수록 투구 감각이 살아났다"고 밝혔다.
이런 겸손과는 달리 이날 승리는 부상과 슬럼프를 딛고 이룬 결실이다. 강속구에 이어 체인지업 등 변화구의 구위도 절묘했고 타자의 수를 읽는 볼 배합이 돋보였다. 4번 브렛 분과 8번 댄 윌슨에게 각각 3안타를 내줬지만 연속안타를 맞지 않아 실점하지 않은 것도 타자마다 다양한 볼 배합을 한 덕이다.
현지 언론도 박찬호의 재기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스포츠전문 케이블TV ESPN의 칼럼니스트 피터 개먼스는 "투구 스타일이 바뀌었고 구위에 자신감을 찾은 데다 제구력까지 안정돼 공격적인 투구로 정면승부를 펼치는 박찬호가 올해의 재기상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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