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전직 교장 선생님 자제분 결혼식에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결혼식 때마다 늘 듣던 소리를 또 다시 들어야 했다. 바로 '일심동체'라는 말이다. 물론 주례사에서 일심동체라는 말은 부부가 합심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라는 덕담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다를 때 어느 한 쪽이 자기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요가 숨어 있다.과연 어느 쪽이 포기해야 할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히 아내 쪽이 포기해야 한다. 이 때 일심동체라는 말은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 체제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일심동체'의 사고방식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흔히 억압되고 남성의 목소리만 대표성을 지녀 왔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에 관한 입법과 정책 수립 과정에서 남성, 특히 대학 교수들의 목소리가 교육계를 대표하는 지배적 목소리로 군림해 왔다.
교육 현장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초·중등 교사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현장의 실상이 무시된 교육정책이 만들어진다. 전국적으로 초·중등 교원 수는 38만명, 학생 수는 780만명, 학부모는 1,000만명이 넘는다. 이처럼 초·중등 교육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약 2,590만명의 욕구와 의견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교원들이 배제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공교육의 파행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 교사들의 입지가 교수는 물론이고 남성 교사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성 교원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약 70%, 서울시만 해도 약 80%나 된다. 그러나 교육관리직과 전문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21세기는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여성 교원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것이며, 교육에 대한 어머니들의 관심사를 누가 충실히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
국회의원 비례대표 가운데 50%가 여성 몫으로 할당된 마당에도 교육계는 그런 흐름조차 좇아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부정부패가 없고 환경이 잘 보전된 핀란드는 남녀 평등과 여권 보장 면에서도 최고의 모범 국가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헬싱키 시장이 모두 여성이고 국회의원 200명 가운데 75명이 여성이다. 이런 여건을 토대로 첨단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나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활동 참여를 통해 국가경쟁력과 교육력을 높여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미국의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의 어머니 애비게일 여사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1776년 3월 31일 그녀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의회에 보냈다. "여성들을 잊지 마십시오. 남편들의 손아귀에 무제한적인 권한을 쥐어 주지 마십시오. 모든 남성은 기회만 되면 독재자가 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성들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이 주어지지 않으면 여성들은 반란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즉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 이 법에 구애받지 않을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절제된 목소리로 강력히 호소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 지금 여성 교원들의 심경이 애비게일 여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책입안자와 정당, 단체는 얼마나 될까?
화사한 초여름이 한창이다. 일심동체라는 말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부정적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여성 교원들의 목소리가 교육계뿐만 아니라 교육 입법의 현장에서도 더해가는 신록처럼 피어나기를 고대해 본다.
/정재량 서울시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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