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리처드 니스벳 지음·최인철 옮김 김영사 발행·1만2,900원
색색의 볼펜을 죽 늘어놓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라는 실험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가장 희귀한 색의 볼펜을 골랐다. '튀는' 걸 마음에 쏙 들어 했다는 얘기다. 한국인은 무얼 골랐을까? 짐작대로 가장 흔한 색의 볼펜을 골랐다.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서양과 동양은 정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을 딱 갈라서 대비하는 건 물론 무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예술을 가르칠 때 '동·서양의 차이'는 단골 주제다. '비교○○'라고 이름 붙인 모든 학문이 좀 거칠게 말하자면 대부분 동·서양의 차이를 다룬 것이다.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의학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권에서 칼로 인체를 해부해서 병을 고친다는 수술 개념이 적극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의학은 아픈 자리만 손댄다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인체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침이나 뜸, 경락 요법 같은 것이 치료술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런 동·서양의 차이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기존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참고하고 자신이 미시간대, 서울대, 베이징대, 교토대 등 한국, 중국, 일본의 연구진과 여러 실험을 진행한 결과 니스벳은 동양인과 서양인은 사고방식과 판단의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 동·서양의 차이를 '과학'이라는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밝혀 낸 저자의 작업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책에 소개된 실험과 사례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일본과 미국 학생들에게 물고기가 중앙에 등장하는 물속 장면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보여주었다. 양쪽 모두 중앙의 물고기를 비슷하게 기억했지만 물풀이나 개구리, 우렁이 등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글자 그대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차(茶)를 청하는 상황에서 중국인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미국 사람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는다.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서양인은 사물의 속성에 따른 범주화를 더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동양인들은 사물을 조직화할 때 범주보다는 관계성에 더 주목한다. 동양의 어린이들은 자랄 때 부분―전체라는 각도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관계성에 주목하도록 사회화되었다. 사물의 특징을 표시하는 것은 명사이고,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동사다.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에게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을 분석토록 했다. 중국 학생들은 72%가 문제의 원인을 쌍방에서 찾으려는 양비론적인 의견을 내거나 대립하는 견해를 절충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미국 학생들은 26%만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분석했다. 서양은 양자택일(Either/Or)을, 동양은 종합과 융화(Both/And)를 지향한다. 나아가 서양은 논쟁을 중요하게 여기고 동양은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니스벳에 따르면 폐쇄적이고 동질적인 사회였던 고대 중국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던 데 비해, 개방적인 해양국가였던 고대 그리스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개발이 필요했고, 논리학이 학문의 중요한 기초가 됐다. 자연환경, 경제구조의 차이는 결국 동·서양의 사회구조와 생활태도, 사상의 차이를 낳고, 교육을 통해 전승됐다. '서양에서는 튀어야 인정 받고, 동양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마음을 읽는 동양과 표현을 중시하는 서양' 같은 말은 너무 단순한 것처럼 들리지만 모두 일리 있다.
니스벳은 나아가 앞으로 동·서양의 문화가 새뮤얼 헌팅턴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처럼 충돌하거나 서구식 자본주의로 통합되기 보다 중간 지점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발전과 함께 동양이 급격하게 서구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통 문화가 깡그리 없어지진 않으며, 서양은 동양 문화의 독특한 매력에 갈수록 빠져든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실험을 서양 일반으로, 한국 중국 일본인의 사고와 태도를 동양 일반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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