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열린책들 발행·8,500원
칠레 출신 망명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54)의 소설집 '외면'이 출간됐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떠돌다가 독일로 이주,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외면'에는 그의 등단 초기부터 문학세계가 자리잡고 원숙기에 이르기까지 쓴 중·단편소설 27편이 실렸다.
제목으로 쓰인 '외면'이란 말은 소설집 전체를 묶는 주제이다. 가령 '자동응답기'가 그렇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지금 부재중이거나 여러 다양한 이유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누군가의 자동응답기와 말씀 나누고 계십니다. 나를 아는 분이라면 지금 나오는 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라는 자동응답기의 독백은, 서로가 마음을 나누는 것을 잊고 서로를 외면하는 현대 문명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 '그'는 오랜만에 한 가수의 테이프를 찾아내 카세트에 넣는다. 그러나 그 테이프에서 나오는 것은 어머니와 동생, 삼촌의 목소리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삶과 추억을 외면했던 것이다.
'저 위에서 재스민꽃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에서 화자는 정장을 차려 입고 현관문 앞에서 서성거린다. 사모하는 여인의 집 앞에 선 그는 감히 벨을 누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선다. 그 순간 그는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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