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나 달리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서울대 후문에서 차량 안내 및 주차 관리를 하는 '수위아저씨' 박대만(55)씨가 19일 제108회 보스턴 국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박씨가 미국까지 건너가 국제 대회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아주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됐다. 2002년 2월 박씨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출근길 서울대 순환도로를 혼자 달리고 있었다. 이때 박씨 옆으로 한 외국인이 다가와 함께 보조를 맞춰 뛰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위염을 앓고 난 뒤 박씨는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보통 관광객 정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미국 코넬대 언어학과 존 휘트만(51)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 달리기 파트너가 돼 주지 않겠느냐고 제의하길래 흔쾌히 수락했죠."
이후 두 사람은 매일 아침 호흡을 같이 했다. 학교내 순환도로에서 임진각과 일산 호수공원 등지로 코스를 바꿔가며 함께 뛰었고,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호흡과 자세 등을 서로 지적해주며 국경을 넘는 마라톤 우정을 나누게 됐다. 박씨는 지금까지 8번의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했으며 지난해 춘천국제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19분의 기록으로 완주한 준 프로급 마라토너이다.
그해 6월 휘트만 교수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박씨에게 "보스턴 대회에 함께 출전하자"며 "모든 경비를 부담할 테니 나만 믿고 미국으로 오라"고 말했다. 박씨가 4개월간 마라톤 파트너 생활을 하면서 "보스턴 대회에 한번 나가봤으면…"이라고 혼잣말로 되뇌었던 것에 휘트만 교수가 화답한 것이다. 하지만 박씨는 그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한국 체류기간에 잠시 가깝게 지냈다고 한 두 푼 드는 게 아닌 경비 일체를 부담하면서 초청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로부터 근 2년이 지난 지난달 초. 휘트만 교수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던 박씨에게 이메일이 왔다. 항공료 등 경비 일체를 부담할 테니 미국에 와서 보스턴 대회에 함께 참가하자는 휘트만 교수의 초청편지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서울대 정운찬 총장도 박씨에게 특별 휴가를 주고 다녀오도록 허락했다.
박씨는 "휘트만 교수와는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마라톤이라는 같은 취미로 수십년 지기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며 "친구이자 제자인 그와 함께 보스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의 마스터스 부문(일반인 대상)에 참가하는 박씨는 16일 뉴욕으로 떠났다.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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