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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헌책 속의 밑줄·낙서… 또다른 즐거운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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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헌책 속의 밑줄·낙서… 또다른 즐거운 소통

입력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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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

●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도서관에서는 가끔 장서가가 평생 모은 책을 기증받는다. 그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한 권 한 권 펼칠 때 책 주인의 서명이나 그가 친 밑줄, 여백을 빡빡하게 채운 메모를 만난다. 그 때의 느낌은 새 책을 만질 때와는 다르다. 새 책에서 독자가 저자를 만난다면, 헌 책에서는 전 주인의 숨결까지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답니다."

뉴욕에 사는 가난한 작가 헬렌 한프와 런던의 고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의 편지는 고객과 상인의 주문서와 청구서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의 공식적인 편지는 차츰 서점의 다른 직원들, 그들의 가족과 이웃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마음을 담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20년간이나 계속된다. 그건 내용뿐만 아니라 장정과 제본에도 신경 써서 정성껏 책을 골라주는 서점과, 책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차 세계대전 직후 배급식품으로 살아가는 영국의 서점 직원들에게 식품을 부쳐주는 고객의 따뜻한 마음이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헌 책이어도 도서관 책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발칙하게도 도서관 책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의견을 쓰고 다른 책을 추천하기까지 하는 남자가 있다.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 콩스탕스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서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책이 있습니다.' 란 연필로 쓴 글씨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그 남자의 안내에 따라 도스토예프스키와 니미에,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읽어나간다. 그의 밑줄이 언제나 자기를 지켜보는 듯한 표현이며, 자기에게만 속삭이는 밀어라고 느낀 그녀는 마침내 로맹 가리의 책에 밑줄을 그으며 도서관을 무대로, 책을 수단으로 한 대화에 뛰어든다. 밑줄 긋는 남자와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추적에서 책과 독서문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0대 처녀의 사랑 이야기를 읽게 된다.

예전에는 도서관 책에 대출카드가 붙어 있어 그 책을 빌려 읽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때로 내가 빌리는 책마다 같은 이름을 보게 되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컴퓨터가 도서관에 들어온 후로는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도서관 장서에도 약간의 연필 낙서를 허용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안 되는 건가? 그렇게 하면 책마다 녹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도서관을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간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어줄 텐데.

강은슬/대구 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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