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으로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3김(金)'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됐다. 이미 정계를 은퇴한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에 이어 자민련 김종필(JP) 총재도 10선 고지 등극에 실패했기 때문이다.선거가 본격화할 때까지만 해도 3김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한 듯했다. 벼랑 끝에 몰린 민주당이 DJ의 '적자정당'을 자처하며 호남민심을 자극한 것도,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과 차남 현철씨가 무소속으로 원내 진입을 노린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었다. 유일한 현역인 JP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민심은 현실정치에서 3김의 퇴출을 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DJ에 기댄 민주당 대신 햇볕정책 계승과 지역주의 극복, 전국정당화 등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이 같은 결과는 DJ가 현실정치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DJ 이념의 계승자를 자처한 민주당이 참패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DJ의 정치적 영향력의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PK 유권자들은 YS의 아들을 고향에서 도중하차시켰고 박 의원에게는 참패를 안겼다. 정계은퇴 후에도 고비마다 PK 민심을 뒤흔드는 것으로 여겨졌던 YS의 영향력의 실체가 거품이었음이 완연히 드러난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더 이상 YS의 언행 때문에 PK 민심이 요동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충청권 민심도 이번에는 '핫바지론'의 허울을 벗어던졌다.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감정적 호소보다는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현실정책에 대한 선호를 적극 표출함으로써 JP를 정치적 재기불능 상태로 내몰았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김대중-침묵. 김영삼-침통.
17대 총선으로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은 세상 인심이 변했음을 실감해야 했다.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꾸준히 행사해 왔던 두 사람은 이번 선거로 '먼 산 위의 구름'이 됐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당초 이번 총선에서 두 사람은 눈에 띄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 적자 계승'에 당의 사활을 걸었던 민주당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선거와 멀어지기를 택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선뜻 민주당의 손을 들었다가 만약 선거가 '민주당 참패'로 끝날 경우 씻을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됐다.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선거전에 적극 개입했다. 경남 거제에 출마했다 사퇴한 둘째 아들 현철씨와, 자신의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의 선거 사무소를 방문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자신을 외면한 한나라당과의 정면 승부로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DJ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동교동 직계인 김옥두 최재승 의원 등이 전멸했고 호남 표심이 열린우리당으로 쏠린 것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 들여진다"고 말했다. 장남 김홍일 의원이 민주당 비례대표로 계속 원내에 남아있게 된 것은 그나마 DJ에겐 위안거리. 그러나 김한정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며 "현실 정치에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지도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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