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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국민의 심판 되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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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국민의 심판 되새겨야

입력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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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심판은 냉엄했다. 탄핵 돌풍에 휩싸였던 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에 의석 과반을 주는 결과를 끝으로 차분하게 마감됐다. 감성에 호소한 정치권의 전략에 유권자들은 균형감각과 이성적 판단으로 대응하는 성숙함을 보였다. 13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여대야소를 만들어 준 유권자는 그러나 턱걸이 과반수라는 절묘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한나라당에는 견제의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동시에 민주노동당을 원내 3당으로 만들어 힘을 북돋우면서 민주당과 자민련에는 경고 카드를 내밀었다.그렇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승리를 자축하는 것도 좋고, 정당의 진로도 걱정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국민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가 곰곰이 되씹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선거가 갖는 참다운 의미이기 때문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선거 결과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네 탓'으로, 승리하게 된 이유는 '내가 잘한 탓'으로 생각한다면 그 순간 선거의 의미는 반감된다. 국민들의 지지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자성할 때 17대 총선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승리감에 도취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기존 의석보다 백 석을 더 얻었으니 큰소리 칠만도 하지만 그럴수록 선거 결과로부터 자신들의 부족함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자세와 함께 여당으로서 의연함과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원내 과반수 확보를 계기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을 일시에 해결하려는 조급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재신임 연계 등에 관련한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탄핵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나름대로 절차를 밟고 있는 사안인지라 그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은 오히려 삼가는 것이 좋다. 정치적 합의를 통한 탄핵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원내 과반수의 힘에 의한 압력으로 밀어붙여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정당 지지율이 40%에 못 미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목표였던 개헌 저지선 확보에 성공했다고 안심하거나 막바지 박근혜 대표의 고군분투에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원내 1당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던 지난 정치적 행보를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이 무엇을 뜻하는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영남 지역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나 건전 보수, 합리적 보수세력을 폭 넓게 흡수하여 전국 정당의 모습을 갖추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4년 뒤 민주당, 자민련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명백하다.

진보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을 이룩한 민주노동당은 의정 활동을 통해 국민들이 어떻게 진보정치의 진수를 맛보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 동안 소외되었던 계층들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진보적 정책의 구현에 힘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국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기존 정치권의 구태에 식상한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열심히 일하는 의회 문화를 창출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민련 또한 깊은 성찰로 정당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거는 갈등의 표출이자 곧 통합의 시작이다. 총선 결과에 대한 승복은 통합 모색의 길로 연결되어야 한다. 친노와 반노, 찬 탄핵과 반 탄핵, 지역 갈등과 계층적 갈등, 그리고 세대 갈등으로 입은 상처를 함께 치유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으로 민생을 살피고 양보와 타협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 때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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