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반 거대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총선 승리에만 도취돼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외부적으로는 탄핵문제가 버티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노선투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가로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16일부터 이런 분위기는 당내에 곧바로 나타났다. 정동영 의장은 "내부적인 통합과 상생을 갖출 때라야 상생 정치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과반 여당으로서의 부담감을 방증하면서도 내부의 분란 가능성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앞날을 좌우할 문제는 내부에 있다. 당 진로를 둘러싸고 각 계파간 세 대결이 본격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정 의장과 신기남 상임중앙위원 등을 위주로 한 실용주의적 민생파, 김근태 원내대표 중심의 정통 재야파, 개혁당 위주의 친노(親盧)파 등 3대 세력이 선명성과 방향성을 놓고 주도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
게다가 지도부의 한 축을 이뤘던 이부영 김정길 상임중앙위원이 낙선하면서 당권경쟁 촉발 계기도 마련됐다. 여기에 오영식 이인영 우상호 정봉주 우원식 이화영 우윤근씨 등 386세대가 대거 진입한 것도 세력분포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17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뤄질 원내대표 선출이 힘겨루기의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각 세력간 예비 후보자가 거론될 정도다. 이 같은 세 대결이 갈등 양상으로 번지면 총선 전 일부 강경파들에 의해 제기됐던 '분당론'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한 다선 중진은 "이라크 파병 문제,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등 정책을 놓고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내에서 이를 조정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정치적으로 무한책임을 지게 된 것도 주요 변수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당이 조만간 현실화 하게 되고, 긴밀한 당정협의를 통해 국정을 책임지게 되는 상황에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당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명운은 내부 분란 소지와 산적한 외부 현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한나라당
4·15총선으로 한나라당은 '3선(選)' 세상이 됐다. 121명의 당선자중 27명으로 양적으로는 22%를 조금 웃도는 수치지만 그 면면을 보면 녹록치 않다.
수도권에선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최병렬 대표 시절 재선실세 3인방이 고스란히 생환했다. 또 최연소 남경필 의원을 비롯해 안상수 맹형규 의원 등이 3선 고지를 밟았다. 황우여 이윤성 이경재 의원 등 인천 당선자 3명도 모두 3선이다. 영남권에선 안택수 권오을 임인배 김무성 권철현 의원을 비롯, 낙천 대상으로 거론됐던 김용갑 정형근 의원이 나란히 3선 화환을 목에 걸고 돌아왔다. 한 마디로 '말발 센' 인사들이 3선 훈장을 달고 당내에 대거 포진한 것이다. 이들보다 선수가 높은 4선 이상은 김덕룡 강재섭 이상득 김형오 이규택 박희태 의원등 6명뿐이다.
당장 앞으로의 당 운영이 3선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표부터 3선이다. 박 대표는 '미래연대' 활동을 함께 했던 개혁적 3선 의원들의 지원 속에 당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있을 당직 개편에서도 이들의 중용이 예상된다. 남경필 안상수 권오을 의원 등이 그들이다. 김무성 맹형규 의원 등도 적극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대여관계에선 상생의 정치, 대내적으로 정책정당화라는 박대표의 당운영 방침도 이들 개혁적 3선들과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홍준표 이재오 의원 등 강경파들의 협조 여부는 미지수다. 재선시절에도 자기 목소리가 분명했던 이들이 박 대표와 어떤 궁합을 보이느냐는 앞으로 한나라당의 기상도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전부터 박 대표와 명시적으로 대립각을 그어온 이재오 의원은 16일 "인간적으로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박 대표와 정치노선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3선의 박 대표가 다른 3선 의원들과 어떻게 코드를 맞추느냐에 한나라당의 전도가 달린 셈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총선 다음날인 16일 당선사례를 사실상의 정책발표회로 갈음했다. 정치권의 이슈를 선점해 나감으로써 10석인 소수의석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3당의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권영길(權永吉) 대표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속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정당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양당 구도 속 조정자역을 자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권 대표는 이날 여야대표 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철회를 주장해, "탄핵에 대한 정치적 타협"을 언급한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보다 도리어 한 발 앞서 갔다.
전원 초선인 당선자들도 실업문제 해결,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철폐, 이라크 파병철회 등에 대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선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시' 등 자기 색이 확실한 정책들을 공론화하고 나설 계획이다.
이영순 당선자는 "갈수록 늘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견디기 힘든 차별로 고통 받고 있다"며 "1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하고 장기적으로 근로자 파견법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현애자 당선자는 "쌀 협상을 비롯한 현 정부의 농업 정책은 농업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며 "27%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식량 자급률을 40%까지 끌어올려 식량 주권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당선자는 "지난해 개정된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영세상인들이 아닌 건물주를 위한 개악"이었다며 "현행 12%의 임대료 인상률을 한 자릿수로 낮추고 보호대상을 모든 비주거용 상가로 확대하는 내용을 입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권위적인 국회의원의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는 것도 한결 같은 다짐이어서 등원 후 여러 가지 이색 행보들이 예상된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인 단병호 당선자는 "정치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서민들의 생활 현장"이라며 "집회현장이든 공장이든 어디든 달려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긴 수염과 고무신으로 '기인'이라 불리는 강기갑 당선자는 "중요한 것은 번지르르한 겉 모습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실천 의지"라며 "농민 대표 의원으로서 농민들의 뜻에 따라 옷차림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민주당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향후 진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당선자 9명 전원이 참여하는 비대위를 구성해 당 재건에 전력을 쏟아붓기로 했지만 벌써부터 일부 당선자의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민주당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민주당은 16일 오후 선대위 전체회의를 열어 한화갑 전 대표 등 지역구 당선자 5명과 손봉숙 공동선대위원장 등 비례대표 당선자 4명이 비대위를 구성해 당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당권파를 대표한 최명헌 사무총장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져 외형상 민주당은 단일 대오를 갖추게 됐다. 선대위는 19일 오전 비대위 첫 회의와 동시에 해산될 예정이며, 당 내 분란의 양대 축이었던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2선 후퇴로 가닥을 잡았다.
사실 오전까지만 해도 당 내에서는 내분 재연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15일 밤 추 위원장이 '평화민주개혁세력의 재결집'을 강조하고 나서자 조 대표는 16일 새벽 대표직 사퇴와 함께 추 위원장을 배제한 비대위 구성 방침으로 제동을 걸었다. 이어 호남권 당선자들은 추 위원장이 참여하는 독자적 비대위 구성안을 내놓는 등 조-추 대결 양상이 재연됐다. 오후 들어 상황은 반전됐지만 민주당의 진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미 당 안팎에서는 분당 전 '친노'로 분류됐던 이낙연 김효석 이정일 의원 등의 이탈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당직자조차 "한 명이라도 탈당할 경우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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