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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존 버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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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존 버거 지음

입력
2004.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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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 지음·김우룡 옮김

열화당 발행·8,000원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꾸준히 이름을 알린 소설가 존 버거(78)는 미술평론, 사진이론, 시나리오 등 폭넓은 글쓰기의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영국인인 그는 30년 전 조국을 떠나 프랑스 동부의 산골 마을에 자리잡았다. 버거는 그곳에서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생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끈기있게 파헤쳐 왔다.

1984년 출간돼 여러 나라에서 꾸준하게 읽혀 온 존 버거의 에세이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은 그의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는 첫 장에서 '시간'과 '공간'에 관해 서술한다고 밝혔으며, 그것은 책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도시화의 여정에 놓인 인간들에게 본래적 의미의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일깨우는, 매우 철학적인 산문집이다.

작가는 미래로 가는 도시와 휘황찬란한 신기술에서 등을 돌리고 작은 마을을 본다. 햇빛 가득한 푸른 하늘, 산맥 저쪽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흰구름 몇 조각. 그는 '순간'이라는 시간에 미래와 과거가 교차하는 것을 본다. "삼색기가 나부끼는 읍사무소 앞에 서 있던 남자와 여자들은 이제 그들 후손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그들은 과거의 신비와 영속성을 지니면서 일종의 완결된 미완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후손들의 지식과 행동에 의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편으로, 그들 스스로를 완결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버거가 알려주는 것은 미래로 가는 길은 과거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듯 보이는, 그러나 많은 도시인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공간을 옮겨가는 이주는 사람들을 뿌리째 뽑아놓는 경험이라고 버거는 말한다.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전례없는 규모와 새로운 종류의 폭력으로 이주를 요구한다. 매우 아름다운 언어로 버거는 사라진 공간에 말을 건다. 집이라는 말이 세상의 중심을 의미한다고, 지리적이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에서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다. "집이 세상의 중심인 까닭은 그곳에서 수직과 수평의 선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수직선은 위로는 하늘로 아래로는 땅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다. 수평선은 다른 곳을 향해 가로질러 가는 땅 위의 모든 길을 말한다. 집은 지상에서의 모든 여행이 시작되는 곳임과 동시에 희망을 가지고 되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공간을 떠나는 도시인들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상념이 에세이 전체를 이루는 내용이다. 상념의 시간이 지난 뒤 기다렸던 여자가 돌아오고 두 사람이 마을에서 함께 잠을 깬 날 아침은 "인간의 이주가 있기 전 본래의 집에서의 그 근원적 아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아침이었다." 산 속 마을에, 그 속의 집에 오래 몸을 두어온 버거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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