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주인과 함께 출근버스를 탔는데 뒷좌석에서 몇몇 사람들이 승용차를 탄 양 마구 떠들더군요. 지난 밤 술을 세게 한 직장 동료들인 것 같았습니다. “아후, 어젠 정말 개 됐다. 취해서 뭘 했는지 기억도 안나.” 뒤돌아보고 싶더군요. 개가 정말 그렇게 생겼는지.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개가 유난히 대화에 많이 등장한다는 거죠. ‘개XX’ ‘X같은 X’ 같은 욕은 물론이구요 ‘개수작 마라’ ‘개도 웃겠다’ ‘개 같은 세상’ 등등이지요. 마치 개에게라도 화풀이를 해야 세상을 좀 견디겠다는 투정같이 들리더군요.
그래서 가만히 개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전용침대에 앙증맞게 누워 꼬리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주인의 총애를 받는 애완견이 있는가하면, 복날 육보시할 날만 기다리는 보신용 개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눈을 주고 싶은 대상은 사람을 섬기는 개들입니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자폐 어린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도우미개들 말입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폄하하는 사람들 있지요? 이렇게 되묻고싶네요. “당신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할 수 있나요?”
안내견은 사람을 위해 평생 맛있는 고기 한점 못 먹고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불임시술까지 받습니다. 마약탐지견은 후각을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끼만 먹습니다. 그들이 야수의 본능을 버리고 고도의 훈련을 거쳐 도우미개로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의 속을 마구 긁어댔던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그래요, 자신이 지지한 후보자가 당선된 사람은 좋아서, 싫어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표를 더 많이 얻은 사람은 열 받아서 어젯밤엔 술 한잔 진하게 당겼겠죠. 아, 당신은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이라구요. 축하합니다. 당선되면 국민의 충복으로 살겠다는 약속, 오늘부터 지켜지는거지요?
자, 이제 정치의 계절은 지나고 화합과 나눔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도우미개를 보거든 한번 생각해 봐요. 개도 하는 일을 사람이 못하고있는 건 아닌가.
앗, 내려야할 곳이군요. 출근길의 가장 고난도 장애물이 버스계단이예요. 주인이 헛발을 짚지않도록 천천히 내려가야 하는데 개한테는 그게 물구나무를 서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힘내야죠. 오늘 하루도 주인님을 안전하게, 멍멍! 견마지로(犬馬之勞)라는 말이 있죠. 친구인 말은 없지만, 저라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께요. 그리고 정말 사람들도 서로 질시하거나 반목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청각장애인 반현주씨와 보청견 이지
반현주(27ㆍ방송통신대 국문학과4)씨는 15년을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12살이었던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귀가 들리지 않았다. 원인불명이었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사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도 자명종 시계가 끊임없이 울려대도 가스렌지 위의 삐삐 물주전자가 허연 김을 토해내며 아우성을 쳐도 그녀는 귀는 아무런 경고신호를 보내주지않았다.
건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을 지칭하는 말)에게는 고막이 찢길듯한 굉음만을 겨우 희미하게 인지하는 중증 청각장애. 뒤에서 돌진하는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요란한 클락션 소리를 듣지못해 죽을 뻔 한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반씨의 고요하면서 위태한 삶에 보청견 이지(2ㆍ미니어쳐핀셔)가 들어온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청각장애인을 돕는 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한 지 1년만에 어렵게 만난 이지는 지금 반씨의 외로운 밤을 지켜주는 유일한 가족이면서 반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다리역할을 하고있다.
“처음 도우미견센터에서 사진으로 소개받았는데 솔직히 마음에 들지않았어요. 하얀 개를 원했는데, 제일 싫어하는 검은색이더라구요. 그런데 직접 한번 보라고 해서 만났는데 호기심 많은 눈동자가 끌리데요. 지금요? 제 ‘귀’잖아요. 그저 이쁘고 고맙죠.”
반씨를 만나기 전 이지는 전남대 유기동물보호소에 수용됐던 버려진 개였다. 사람에게 버려진 기억이 아프기도 하련만, 이지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자발성이 뛰어나 보청견훈련사의 눈에 곧장 띄었고 6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애완견에서 보청견으로 재탄생했다.
이지를 맞으면서 반씨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가족과 떨어져 서울 보문동 반지하 아파트에 혼자 사는 반씨는 그동안 택배물건을 집에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배달하는 사람이 노크하거나 벨을 눌러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소지란에는 늘 친구의 집주소를 적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진동 휴대폰을 꼭 쥔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잤다. 급한 상황을 알려주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반씨는 휴대폰 없이도 깊고 편한 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지가 반씨 대신 밤의 불침번 역할을 해주는 덕이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면 이지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숨가쁘게 반씨와 현관문 사이를 오가며 소리의 진원지를 ‘보여준다’.
“이지랑 살고부터는 주전자를 태우는 일이 없어요. 이지가 초인종 소리, 주전자 물끓는 소리, 시계 알람소리와 노크소리를 다 알려주니까 이젠 택배도 집에서 받구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아기 울음소리도 알도록 보충훈련을 시킬 거예요. 청각장애인은 아기 울음소리를 못듣다 보니, 우는 아기의 눈물이 귀로 들어가서 장애를 세습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다만 거리에서의 위험은 여전하다. 보청견에게 자동차나 오토바이 클랙션 소리를 인지하도록 훈련시킬수는 있지만 도시의 수많은 자동차 소음속에서 주인에게 위험이 되는 소리를 구분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즘 웹디자인 공부를 위해 하루 종일 학원에서 살다시피하는 반씨는 이지 혼자 빈집을 지키는 것이 안스러워 학원에 데리고 다닌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 눈치가 보통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운전사들은 개를 안고 타지, 왜 그냥 끌고 타냐고 막 야단을 쳐요. 일반 사람들도 개를 데리고 식당이나 지하철에 오르면 불쾌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많구요. 이지가 그냥 애완견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 일하는 개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제 이지는 제 몸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도우미견 어떤 종류있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건 사람사회만이 아니다. 견공들도 넓은 세상에서 비단 애완견만이 아닌 다양한 도우미 역할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안내견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하는 도우미 견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고 차량이나 계단 등 보행에 지장을 주는 요소들을 체크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을 인도하기 때문에 체구가 큰 품종들이 많이 사용된다.
●보청견
소리를 듣지못하는 청각장애인과 노령자의 귀가 되어 일상생활의 여러가지 소리들을 행동으로 알려주는 개들이다. 주로 자명종 시계, 초인종, 노크, 팩스기계음, 아기울음, 화재경보 등의 생활소음들을 훈련을 통해 인지하고 주인에게 알린다.
●치료견
신체적 정신적 발달장애나 성격장애, 또는 노인성 치매 등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즐거운 감정을 갖게 해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이 임무. 해외에서는 자신의 애완견과 함께 치료견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랩탑독(Lap-top Dog)
휠체어견이라고도 불린다. 휠체어를 타고있는 주인 무릎위를 뛰어 오르내리며 간단한 물건을 집어주거나 전기 스위치를 끄고 켜는 등의 심부름을 하는 소형견.
●졸도/발작 경보견
간질을 앓는 사람들은 졸도나 발작 직전 체내 호르몬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때 나는 체취를 감지해 사전에 이를 알려주는 개. 간질환자는 경보견의 안내를 받고 안전한 장소로 옮기거나 약을 먹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인명구조견
특수임무를 위해 고도로 훈련된 개로 구조장비의 하나로 취급된다. 국내서는 119구조대에 속해 활동하는 개들이 많다.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실종자의 위치를 탐색한다. 실종자 위치를 구조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우 크게 짖지만 사람을 물지는 않도록 훈련된다.
●마약탐지견
공항세관에서 마약류를 찾아내는 훈련을 받은 개.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청에서 2001년 인천국제공항 정부기관 지원단지내 2만평 부지에 탐지견훈련센터를 준공해 양성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나이지리아인이 대마초 8kg을 밀반입하다 탐지견에 의해 적발된 사례가 있다.
●검역견
후각을 이용해 다른 국가로부터 밀반입되는 동식물을 찾아내 구제역 및 그외 발생가능한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후각능력이 뛰어난 비글이 많이 활용되는데 비글은 체격이 작아 좁은 공간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장점이다.
■국내 도우미견 교육센터
국내서 도우미 개를 양성하는 기관으로는 삼성생명 도우미견센터와 이삭 도우미개학교 두곳이 있다. 삼성 도우미견센터는 기업의 사회환원활동의 하나로 1993년 설립돼 안내견 보청견 휠체어견 치료견 등을 양성하고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이삭 도우미개학교는 92년부터 시설을 운영하다가 2000년 1월 정식 도우미개 훈련학교로 인가받았으며 주로 안내견과 보청견을 배출한다.
여기서 훈련된 개들은 모두 무료로 영구 임대되고 매년 1,2회씩 실시하는 정기 사후교육과 은퇴후 관리도 이 시설이 모두 맡는다.
하지만 이용자가 급증하는 추세는 아니다. 삼성 도우미견센터 최윤주 부장은 “애완견이나 보신탕은 잘 알아도 사람을 돕는 도우미개 문화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택시 승차를 거부당하거나 음식점 입구에서 손사래부터 당하는 사회적 풍토가 도우미개의 이용을 제약하는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자가 안내견과 함께 비행기 탑승을 하는 것이 자유롭지만 국내서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안내견에 재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있다. 2001년에는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보조견 조항이 추가돼 보조견의 출입을 막으면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관할하는 부서가 없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삭 도우미개학교 이형구 소장은 “보통 안내견 한마리를 키우는데 2,000만~3,000만원, 보청견 한마리에 500만원 정도가 드는데 순전히 독지가의 후원금만으로 일을 해야하니 운영이 너무 어렵다”며 “기부문화가 더 정착되고 정부차원의 지원도 있어야 보다 양질의 도우미개들을 보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다. 개는 훈련사뿐 아니고 사료를 주고 축사를 청소하고 기초적인 사회화 훈련을 시키는 등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삼성도우미견센터나 이삭도우미개학교 모두 자원봉사자 모집을 통해 부족한 일손을 메꾸고 있지만 아직 태부족한 상태. 최윤주 부장은 “혼자만 즐기는 애견이 아닌, 더불어 사는 나눔의 애견문화가 뿌리내리려면 도우미개와 자원봉사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원봉사 문의 삼성도우미견센터 (031)320-9224, 이삭 도우미개학교 (031)356-8712.
/이성희기자
■도우미견들의 세계
보청견은 타고난 발발이 기질과 호기심이 필요하고 안내견은 다소곳하지만 책임감이 있어야한다. 사람을 섬기되 한 주인만 찾는 로열티가 강한 진돗개 같은 견종은 도우미개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 ‘선의의 불복종’을 할 수 있는 상황 판단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우미 개들은 목적별로 다른 품종과 성격, 훈련방법이 요구된다. 타고난 품성에 혹독한 훈련이 더해져 한 마리의 도우미 개가 탄생하기까지는 짧으면 6개월, 길게는 2년의 기간이 요구된다. 사람보다 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도우미 개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안내견- '선의의 불복종'도 복종이다
국내에는 현재 약 50마리의 안내견이 활동하고있다. 자동차와 횡단보도 등 거리의 각종 위험요인으로부터 시각장애자를 안전하게 지키며 보행을 돕는 것이 이들의 역할. 항상 주인보다 한발 앞서 걸으며 모든 위험을 먼저 감수하니 살신성인이 따로 없다.
안내견의 훈련은 거리에서 이루어진다. 생후 7주된 안내견 후보생은 일단 퍼피워커‘(puppywalker)라는 자원봉사자집에서 1년간 사회화 훈련을 받고 그후 약 8개월간 거리훈련을 거친다. 훈련조교와 동행하면서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고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린다.
개는 색맹이라 주변에 같이 서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포착한다. 계단 앞에서는 잠시 섰다가 왼발부터 올려놓으면서 하니스(Harness: 안내견의 등에 메는 일종의 의사전달도구로 시각장애인이 이것을 붙잡고 걷는다)를 통해 주인이 계단의 존재를 감지하도록 한다.
안내견은 가, 서, 왼쪽, 오른쪽, 앞으로, 길찾아, 안돼 등 약 15가지의 단어를 음파를 통해 분별한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지만 눈이 안보이는 주인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선의의 불복종’도 불사한다. 안내견의 제 1 특명은 ‘주인의 안전’이다. 실제로 한 안내견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으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반쯤 걸린 위기상황에서 ‘가자’는 주인의 요구를 끝내 거부, 주인의 생명을 살렸다.
국내 안내견의 90% 이상은 라브라도 리트리버 종이다. 체구가 커서 힘이 좋고 사람을 좋아하는 개이기 때문이다. 삼성안내견센터의 조련사 정재영씨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안내견은 너무 활발해도, 호불호가 너무 명확해도 안되고 다른 개에 대한 친근감도 있어야 하는 등 갖출 것이 많다. 훈련기간 중 10회에 걸친 보행평가를 해서 합격하면 우리끼리는 ‘국가고시 패스했다’고 말한다”고 귀띔한다.
보청견- 자발스럽다고 탓하지 말라
언뜻 애완견처럼 보이는 보청견은 집안에서 주로 활동하므로 푸들 미니핀 시츄 코카스파니엘 등 체구가 작은 품종이 선호된다. 품종보다는 타고난 품성이 중요하다. 자발맞다고 표현될 정도로 설쳐대고 호기심이 많은 개들이 보청견으로 안성맞춤. 보청견 후보들을 주로 유기견센터에서 찾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보청견 훈련사 박성애씨는 “호기심이 많아야 발발이가 되죠. 소리 테스트를 하면 다른 개들은 귀만 쫑긋 세우거나 그저 짖어대는데 비해 이런 개들은 소리의 진원지까지 얼른 쫓아가거든요. 이런 자발성(willingness)은 900마리를 하면 2마리 정도에서 겨우 발견될 정도로 귀한 자질이지요”라고 말한다.
자질을 인정받은 개들은 6개월 정도의 특훈을 통해 보청견으로 탄생한다. 훈련은 기본 복종훈련 외에 오전 오후 딱 30분씩만 한다. 보청견 역할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들기 위해서다. 한번 보청견 역할에 싫증을 느끼면 절대 보청견이 될 수 없다.
보청견은 소리가 난 곳과 주인 사이를 속사포처럼 왕복주파, 주인을 소리의 진원지까지 가게 만든다. 청각장애인과 같이 사는 만큼 짖지는 않고 행동으로만 소리를 알린다.
치료견- 무대체질일수록 빛난다
치료견은 개를 매개로 해서 직간접적인 치료효과를 거두는 AAT(Animal Assisted Therapy)에서 나온 말이다. 1960년대부터 미국서 연구되기 시작했고 국내에선 1995년 대인기피증을 앓던 중학생을 치료견의 도움을 받아 완치시킨 예가 있다.
치료견의 경우 품종과는 상관없이 ‘무대체질’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개인기가 우수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자질이다. 질환을 앓거나 소외의식이 심한 노인들, 치매환자, 자폐증 어린이 등에게 개가 가진 재주를 보여주면서 접근, 개의 털을 빗겨주도록 시킴으로써 안쓰던 손의 근육을 쓰게 만들고, 개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에 접근시키는 등 다양한 임상법이 동원된다.
‘공공칠 빵’하면 발랑 누워 배를 보여주고 ‘굴러’ 명령하면 구르는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기본. 모르는 사람의 손길에도 천연덕스럽게 머리털을 맡기고 몇시간이고 엎드려있을 만큼 인내력 훈련도 추가된다. 훈련은 먹이와 칭찬 등 ‘당근’수법이 주로 쓰이고 ‘채찍’은 낮은 톤의 ‘안돼’ 한마디로 통한다.
도우미 견계에도 얼짱이 인기
시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하지만 안내견은 평생 불고기 맛 한번 보지못하고 죽는 애닯은 신세이기도 하다. 불고기처럼 사람이 먹는 음식을 줄 경우 길을 걷다가 위험요인을 무시한 채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갈수도 있기 때문에 애초 안내견 후보생이 되는 순간부터 과자 한조각도 사람이 먹는 것을 주지않는다. 개 사료 이외의 맛에 대한 기억 자체를 없애는 것. 기본 복종훈련도 음식 대신 좋아하는 공이나 칭찬을 통해 이뤄진다.
안내견과 보청견의 암컷은 성욕 억제를 위해 불임수술을 받는다. 치료견은 발정기에는 활동할 수 없으며 마약탐지견은 후각을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해 보통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생이별도 감수해야 한다. 새 사용자와의 관계설정을 위해 정식 가두훈련에 들어가면 생후 첫 1년을 함께 보낸 퍼피워킹 가족과는 절대 다시 만나지 못한다.
물론 도우미 개 사회에도 ‘얼짱’이 인기다. 보청견의 경우 시력엔 전혀 이상이 없는 주인들이 잘 생긴 개를 찾기 때문에 매칭(보청견과 장애인을 연결시켜주는 것)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안내견은 정작 사용자는 생김새를 상관하지 않지만 체구가 크다 보니 일반인에게 위협감을 주지않고 순하게 생긴 것들이 우대받는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은퇴견 돌보는 김희정씨 가족
“남편 발톱은 안깎아줘도 개 발톱은 깎아줘요.”
안내견으로 활약하다 2002년 은퇴한 토담(9ㆍ라브라도 리트리버)을 위탁사육하는 김희정(37ㆍ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씨 집. 잔디가 곱게 깔린 마당에서 초등학생 남매와 그 둘을 합쳐놓은 것 같은 덩치의 개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겹게 뛰어논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씨는 “토담이도 이제 우리 가족”이라고 말했다.
김씨 가족이 토담을 만난 것은 아파트에 살다가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한 2002년. 밖에서 기를 큰 개를 구하려고 수소문하다 우연히 삼성 도우미견센터에서 은퇴견 보호가정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했다. 안내견으로 청춘을 바치고 은퇴한 토담이는 건강에도 문제가 있고 털도 많이 빠졌지만 김씨 가족은 그의 보스기질과 늠름한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밤이면 순찰을 돌듯이 집안 곳곳을 돌보는 데 얼마나 든든한 지 몰라요. 주인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하고도 잘 놀아주고 무엇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집안에서는 절대 똥 오줌을 안누니까 애완견 기르는 것 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아요.”
무엇보다 토담이는 아이들의 정서교육에 큰 도움이 됐다.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했던 아들 지용(12)은 겁이 없어지고 매사에 차분해졌다. 개를 산책시킬 때의 에티켓도 잘 지킨다. 딸 지원(8)이는 개와 함께 뛰어놀아서인지 잔병치레가 눈에 띄게 적어졌다.
“가끔 토담이가 아프거나 하면 온 식구가 같이 앓아요. 지난번엔 다리 한쪽이 부러져서 급히 수술을 하고 보름 정도 입원했는데, 그때 남편이 얼마나 애닯아하던지…. 밤에는 토담이가 없으니까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김씨는 지난해 늦둥이 셋째딸을 임신하고 병원에서 개부터 치우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토담이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대신 좀 덜 안아주고 청소를 자주 한다. 셋째는 이제 백일이 됐다.
“은퇴견 자원봉사가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평생 사람을 위해 헌신했는데 남은 생은 사람이 돌봐줘야죠.”
/이성희기자
■도우미견에 대한 에티켓
안내견 머리 만지는 건 사람 눈가리는 것과 같아
“신기하다고 안내견의 머리를 만지는 건 시각장애인의 눈을 느닷없이 가리는 것과 같아요.”
견공 사회에도 에티켓이 있다. 특히 도우미개들을 길에서 마주칠때는 이 에티켓을 꼭 지켜줘야 한다. 무심코 한 행동이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 삼성생명 도우미견센터의 박성애씨는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안내견은 눈, 보청견은 귀, 구조견은 코, 치료견은 마음과 같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한다”고 말했다.
1. 길에서 마주친 도우미개를 만져보고싶을 때는 반드시 주인에게 먼저 허락을 얻는다. 도우미개가 아니라도 남의 개를 만질 때의 기본 에티켓. '개'니까 그냥 만져도 좋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주인이 장애인일 때는 치명적인 위험을 부를 수 있다.
2. 개를 만질때는 반드시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등을 먼저 코에 대준다. 개는 코로 세상을 인식한다. 모르는 사람이 느닷없이 머리를 만지려고 하면 개도 위협을 느껴 반발한다. 손등을 먼저 내줘서 체취를 알려준 뒤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순서.
3. 절대 과자나 육포 등 먹을 것을 주지않는다. 선의로 한 일이 주인에게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 도우미개가 육포 등을 좇아 주인을 안전하게 돌보는 임무를 잊어버리면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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