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맛을 모르고 사는 이가 어디 있으랴. 정상에 다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고,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걸…. 삶의 걸음걸이마다 어깨를 짓눌러오는 짐이 때로는 너무 무겁다. 눈부신 햇살이 울적함의 그림자를 더 짙게 하는 날, ‘다 그래’라고 위로하며 지친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 있다.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저스트 블루스(Just Blues)’.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라이브 블루스 바(bar)다. 2003년까지 이태원에 있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지 1년 만에 압구정동으로 돌아왔다. 정통 블루스 라이브를 고집하는 ‘채수영 밴드’의 리더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채수영(47)씨와, 설거지부터 영업까지 운영을 책임지는 채이한(42)씨가 이 곳의 주인이다. ‘힘들고 지쳐서’ 서울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 갔던 두 형제를 1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한 힘은 무엇일까.
"무대 위 형의 모습에 반했습니다"
형 수영씨가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저스트 블루스’의 살림살이를 도맡은 동생 이한씨. 정작 본인은 음악이라면 문외한이라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형의 무대 만큼은 볼 때마다 감동적이라고 말한다. 수영씨도 화답한다.“세상 물정 모르는 형을 돌보는, ‘형 같은’ 동생이 없으면 나 이거 못했죠. 아는 건 음악밖에 없는데….”
형제가 이태원에 라이브 바를 낸 것은 1995년. 하와이로 이민간 부모님을 따라가 미국에서 의류장사를 하던 이한씨가 홍콩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형을 설득한 결과였다.
“미국에 있을 때도 가끔 홍콩에 들러 형의 연주를 봤어요. 형은 주로 영국인들이 모이는 라이브 바에서 공연을 했는데 손님들이 형의 연주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예요. 한국에도 이런 무대가 있어서 형이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동생은 “아예 서울에도 이런 라이브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형이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태원에 ‘저스트 블루스’가 탄생했다. 시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라이브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라 수영씨의 실력은 금새 입소문이 났고 주말이면 서서 공연을 보는 이들이 좌석에 앉은 이보다 훨씬 많을 정도로 붐볐다.
어려움은 IMF 외환위기가 닥쳐온 98년 시작됐다.“경기가 나빠지면서 이태원에 북적대던 외국인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태원에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생겨 손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죠.”
결국 형제는 2003년, 가게를 정리하고 하와이로 떠뎬? 라이브 음악이 잘 먹히는 미국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팬들의 눈물 잊지 못해 다시 서울로
그 후 1년, 형제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미국에서 가게를 내는 절차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군요. 그러나 돌아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지난해 4월26일, 이태원 ‘저스트 블루스’의 마지막 공연 때 울며 밤을 지새던 팬들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거든요.”
이한씨는 마지막 공연을 회상하면 아직 마음이 저린 듯 눈이 붉어진다. 8년 동안 많은 이들의 안식처가 됐던 ‘저스트 블루스’가 문을 닫는 날, 가게를 찾은 손님으로 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덩치 큰 청년부터 노인까지, 블루스를 사랑하는 손님들은 공연이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울기 시작했고 창고에 있는 술까지 다 떨어지고 창 밖이 밝아오는 오전 6시가 돼서야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하나 둘 가게를 나섰다.
마음을 비우고 하와이로 떠난 후에도 팬들의 이메일이 쏟아졌고 심지어 한 밴드 멤버는 매주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않고 울기만 했다. ‘저스트 블루스’가 있던 건물 주인마저 형제를 그리워하며 간판도 떼지 않고 그 자리에 세도 안 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돌아가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마음이었는지 ‘형, 가야 할 것 같아’라고 제안하자 형도 흔쾌히‘그러자’고 하더군요. 대신 사람들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압구정동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블루스에서는 흙 냄새가 난다"
인터뷰를 위해 압구정 가게를 찾은 9일. 이날도 공연이 시작되기 한시간 전인 오후 8시부터 ‘채수영 밴드’의 블루스에 젖어보려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입장료 5,000원만 내면 편한 마음으로 자유롭고 느긋하게 블루스 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로 모여든 이들은 연주가 시작되자 이야기를 멈추고 진한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왜 하필 블루스냐”라는 질문에 수영씨는 “내 삶과 너무 닮아서”라고 잘라 답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작은 아버지가 선물한 기타를 처음 만진 후 혼자 이른바 ‘빽판’을 들어가며 기타를 익혔다는 수영씨. 20대 초반 미8군 밴드에 들어가 7년 동안 우리나라에 미군 무대를 돌며 연주하던 그는 70년대 말 미군이 조금씩 철수하면서 클럽들이 하나 둘 문을 닫자 음악에서 손을 떼기도 했었다.
“같이 음악하던 친구들이 일할 곳이 없어 나이트클럽 밤무대를 전전하는데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못참겠더라구요.‘차라리 음악을 하지 말자’라는 결심으로 기타까지 팔아버리고 작은 아버지가 계시던 홍콩으로 가 한국어을 가르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주 한잔 걸치고 집에 가던 그를 잡아 끈 것은 한 라이브 클럽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였다.“술 김에 무대에 올라가서 몇 곡 연주한 게 다시 기타를 잡게 된 계기가 됐어요. 하모니카를 불던 윌리엄 탱(William Tang)이 마침 기타리스트가 필요하다며 함께 하자고 제안해오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음악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홍콩에서 지낸 시간이 7년입니다.”
활동하던 밴드가 블루스 밴드였던 것이 수영씨를 자연스럽게 블루스에 빠져들게 한 계기가 됐다. 그는 블루스를 ‘흙 냄새, 땀 냄새 나는 우리의 삶과 닮은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가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드 세 개, 혹은 음 하나만 가지고도 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게 블루스입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삶의 깊이를 알아야 블루스의 깊은 향기가 우러나지요.”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채수영씨의 추천 5곳
블루스(Blues)’는 흑인 노예들이 힘든 일과를 잊기 위해 불렀던 ‘노동요’로부터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노래가 종교적으로 발전한 형태가 ‘가스펠(gospel)’이라면 이와 달리 세속적으로 전해진 것이 ‘블루스’로 발전했다. ‘블루스’라는 단어는 ‘우울하다’라고 쓰이는 ‘블루(blue)’로부터 비롯됐으며 1914년 발표된 W.C. 핸디(Handy)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라는 곡을 통해 대중적으로 퍼졌다.
블루스의 가사는 주로 고독, 방랑, 좌절 등을 소재로 하지만 대부분 그곳으로부터 탈피하고 싶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블루스는 후에 재즈, 로큰롤, R&B 등 다양한 장르로 발전하며 ‘대중 음악의 어머니’라고 칭해졌다.
‘채수영 밴드’ 리더 채수영씨가 아끼는 블루스 음악 5곡을 추천했다.
◆ B. B. 킹(B.B. King) 'The Thrill is Gone'
‘블루스의 제왕’이라 불리는 B. B. 킹의 곡 중에서도 특히 명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곡으로 블루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주해보는 곡이다. 사랑했던 여인이 떠나간 후에 겪는 아픈 마음을 표현했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상관 없이 자신의 현재 감정에 푹 빠져들고 싶을 때 제격이다.
◆ 티본(T. Bone) 'T. Bone Shuffle'
‘블루스는 우울하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곡. 깡총깡총 뛰는 듯한 4박자 리듬을 뜻하는 ‘셔플’을 적용해 블루스도 흥겨울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연주인, 관객 모두 하나가 돼 라이브를 즐기자는 노래 가사도 즐겁다.
◆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Have You Ever Loved a Women'
블루스 중에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에 하나다.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한다’는 안타까운 가사. 늦은 밤 분위기 잡고 싶을 때 조용하게 틀어두면 좋다.
◆ 앨버트 킹(Albert Kind) 'I Play the Blues for You'
B. B. 킹, 프레디 킹과 함께 ‘블루스의 3대 킹(King)’으로 일컬어지는 앨버트 킹의 대표곡. ‘인생이 힘든 그대를 블루스로 위로해줄게요’라는 가사에 슬픈 멜로디를 입혔다.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 들으면 마음의 위로가 된다.
◆ 버디 가이(Buddy Guy) 'Damn Right, I've Got the Blues'
‘사회에서 실패해 집에 돌아와봤더니 식구들도 나를 외면하더라’는 가사. 가난에 찌들리다 뒤늦게 성공한 버디 가이의 치열했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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