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경제와 민생이다. 17대 총선이 막을 내리면서 이제부턴 국가적 역량과 에너지를 오로지 경제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들의 투자위축과 성장동력의 상실, 끝없이 추락하는 내수경기, 가계버블의 후유증과 신용불량자 양산, 노사갈등과 청년실업 사태…. 정치 논쟁에 휘둘려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경제 현안들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한국경제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팽배하다. 이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총선 이후 선거의 승패나 정치적 역학구도와는 상관없이 정부와 각 정파가 일치단결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것을 촉구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는 "이번 선거가 정책대결보다는 세대간 갈등의 양상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총선 이후 갈등 구조가 더 심화하면서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각 정파가 선거결과를 깨끗이 승복하고 화합과 상생의 자세로 모든 역량을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꼽은 그는"일자리가 늘어나 취업을 많이 하면 소득이 생기고, 결국 이 돈으로 가계 빚도 갚고 소비도 늘리면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라며 "세계적 공황이 왔을 때 미국이 뉴딜정책을 썼듯이 우리도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 일자리창출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 한국판 뉴딜정책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 박재하 연구위원은 "정치불안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기업들의 투자기피와 내수침체, 경기 양극화 등으로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급속히 훼손되고 있다"며"한국경제가 확고한 정치리더십을 토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치권이 정파를 초월한 단합과 협조로 경제난국 타개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 등 경제회복의 장애물로 지목되고 있는 현안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위원은 "통화팽창이나 재정확대 같은 거시정책으로 경기회복을 도모하기 보다는 신용불량자문제 같은 현안들부터 하나 둘씩 확실하게 풀어나간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5월 출범 예정인 배드뱅크(다중채무자 부실채권 집중기관)만 해도 총선을 앞두고 정치논리에 의해 급조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운영방안은 경제논리에 맞게 새로 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관계의 개혁도 총선 이후 미세조정이 필요한 분야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선임연구위원은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과거 투쟁위주의 노동운동이 대화와 타협 중심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진보 정파가 국회의 다수를 형성하면서 각종 노사정책이 노조 편향적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고 이 경우 기업들의 국내 투자기피와 이탈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는 만큼 정책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도 총선 이후 정치권이 경제회생에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여야 모두 총선 때 보여준 열의를 앞으로는 민생안정과 경제 살리기에 쏟아주길 바란다"며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 등 민생현안을 해결하는 일에 초당적인 협력을 하고 규제완화, 노사안정 등을 통해 경영환경을 개선하여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논평을 내고 "여당이 과반 안정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산적한 경제 현안들을 과단성 있게 풀어나갈 기반이 마련됐다"며 "정부와 여당은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대될 수 있도록 유망 신성장산업의 육성에 힘쓰는 등 국가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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