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하는 팬이 역사를 두 번 줍다.' 14일(한국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매코비 만에 카약 몇 척이 떴다. 그 중 푸른색 카약에 앉아 열심히 노를 저으며 라디오 중계에 귀 기울이는 인물은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면을 쓴 한 중년의 사나이였다.잠시 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이 열린 SBC파크의 관중석 담장을 넘어온 공 하나가 쏜살같이 바다로 풍덩 빠졌다. 그 공은 메이저리그 역대 홈런 3위(660개) 기록을 갈아치운 이정표로 배리 본즈가 날린 661호 홈런볼이었다. 수많은 카약이 몰려들었지만 가면의 슈워제네거가 가장 빨랐다. 행여 놓칠세라 들고 있던 휴대용 냉장고까지 들고 그대로 바다로 '첨벙∼' 뛰어든 그는 공을 주워 치켜들며 마침내 가면을 벗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정확히 29시간 30분전(13일)에 본즈의 660호 홈런볼을 주운 사나이였다는 것. 새로운 역사가 담긴 공을 두 번이나 잡은 억세게 운좋은 래리 엘리슨(사진)이라는 이 중년(53세)의 사나이는 컴퓨터회사의 중역으로 밝혀졌다. 전날 660호 홈런볼이 담긴 봉지 속에 661호 홈런볼을 담아 넣은 엘리슨은 "공을 잡은 걸 알고 괴롭히지 않을까 해서 위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엘리슨은 13, 14일 경기 티켓이 있었다. 14일 티켓은 전망 좋은 홈 플레이트 뒷좌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상시처럼 카약을 즐기며 라디오 중계를 듣다가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는 공을 파는 대신 660호 공은 본즈에게 돌려줬고 661호는 자신이 보관하기로 했다. 본즈 역시 "660호는 특별한 만큼 내 책상 위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면서도 "661호는 엘리슨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15일 공을 사겠다는 사람이 엘리슨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 대신 자동응답기가 답했다. "제 휴대폰은 공을 주우려고 바다에 빠졌을 때 소금물을 들이마셔 신음하다 숨졌습니다. 삐∼"
엄청난 돈을 긁어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엘리슨에게 '선행 남'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자 그가 한마디 했다. "그것(돈)도 멋지죠. 하지만 때론 다른 가치가 소중할 때가 있죠. 전 오랫동안 자이언츠 팬이었습니다. 처음 스트라이크를 먹었을 때(공을 주웠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제 말짱한 팬으로 돌아왔습니다."
본즈의 2001시즌 73호 홈런볼 소유권 때문에 두 사람이 법정까지 갖다가 결국 45만 달러에 팔아치운 부끄러운 과거를 자이언츠 팬 엘리슨은 기억하고 있다. 대신 엘리슨은 본즈에게 공을 돌려준 대가로 여러 장의 야구경기 티켓을 받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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