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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범죄의 재구성' 등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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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범죄의 재구성' 등 3편

입력
2004.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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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배신이다. 인생은 사기다. 인생은 뒤집기다. 그 모든 것을 포괄해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대다수 인간의 삶은 일확천금을 꿈꾸다 쪽박을 차는 신세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총선 정국의 정치판 같은 얘기냐고 하겠지만, 최동훈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이 담는 세계가 그렇다.한국은행 돈을 터는 희대의 사기단 내부의 얽히고설킨 음모와 사기의 파노라마를 펼치는 이 영화의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와 화면 연출은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바야흐로 바다 건너 영화에는 있었으나 한국 영화에는 없었던 신종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징표로 가득 하다. 이름 하여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총천연색 무늬를 지어내는 버라이어티 범죄추리영화인 것이다.

‘범죄의 재구성’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근사한 사기극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고도의 두뇌 싸움을 하는 첨단 사기극과 같은 일은 한국에서 잘 일어나기도 힘들 것이다. 그보다 이 영화는 물지 않으면 물리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사기계 고수들의 절묘한 심리전을 담는다. 고상하거나 고상한 척 하는 인간들은 이 영화에 없다. 서로 느물거리며 한 치라도 빈틈을 파고들어 상대의 약점을 후리는 사기에 의한 사기를 위한 삶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일체의 감상을 드러내지 않고 속도감 있게 그 인간 군상의 면면을 관찰하는 가운데 이 영화는 놀랄 만한 현실감을 획득한다. 무릇 사기를 치려면 상대를 찾아가기 보다는 상대가 스스로 찾아와 걸려들게 해야 하나니, 다른 사람을 속여 넘기는 사기꾼들의 그 집요한 장인 정신을 통해 자기 맨 얼굴을 드러내고는 살기 힘든 이 시대의 아수라장 같은 현실을 직설적으로 풍자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역설은 도덕적 고상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등장인물들에게서 이상하게도 순결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자들은 자기네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명분을 내걸지 않는다.

‘지구를 지켜라’ 이후 완벽하게 영화배우로 새 출발하고 있는 백윤식씨는 이 예술적인 사기꾼 캐릭터를 통해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기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의 포커 페이스를 통해 온갖 명분으로 사기를 치는 인간들을 각종 매체에서 넌더리 나게 봐야 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범죄의 재구성’은 사기 치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감동도, 공감도 끌어내지 않는다. 곧 관객인 우리에게 사기를 치지 않는다. 그들은 잡놈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에누리 없는 연출자의 시선 덕분에 그들은 순결해 보인다. 인생은 이런 거야, 라고 폼잡지 않고 말해주는 것이다.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는 1987년에 나온 ‘더티 댄싱’의 속편 형식을 취하며 버라이어티 춤 전시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플롯으로 펼쳐진다. 춤을 추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왜 그렇게 춤에 빠지는 이유 정도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서비스가 아닐까. 전편인 ‘더티 댄싱’에는 그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말이다.

안젤리나 졸리와 에단 호크가 나오는 ‘테이킹 라이브즈’는 수사관과 범인이 특별한 감정에 빠진다는 유구한 범죄영화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독특하지만 역시 근사한 결말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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