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날이다. 내가 선거권이 없던 어린시절엔 투표소가 마련되어 있는 학교까지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왔다. 지금도 '선거'하면 나는 직접 투표에 참여한 스무 살 이후의 일보다, 할아버지 옆에서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잘 받들어 모시면서 학교에 마련된 투표소까지 다녀오던 일이 먼저 떠오른다.언덕길을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는 할아버지께서 몸의 균형을 위해 지팡이를 짚으시고, 평지에서는 내가 그것을 받들어 모시는데, 이때 지팡이를 두 손으로 가슴 앞쪽으로 잡고 땅에 끌리지 않도록 조심해 들어야 한다. 어른의 지팡이를 모실 때는 그걸 꼭 두 손으로 모셔야 하고, 장난 삼아 땅에 콕콕 찍어서는 안 된다. 지팡이는 어른 몸의 분신이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할아버지께서 신은 고무신이 유난히 희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평생 양말 대신 버선을 신으셨는데, 흰 고무신 위로 드러나는 흰 버선발도 눈이 부시게 단아했다.
그런데 그때 그 고무신을 혹시 어느 힘 있는 후보가 주었던 것은 아닐까. 오랜 세월이 지나니 이젠 불경스럽게 그런 생각도 빙긋 웃으며 해본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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