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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여성이 한국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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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여성이 한국을 바꾼다

입력
200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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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그 동안 국회의원 선거를 열여섯 번 치렀고 그 때마다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 본래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했겠지만 야당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과 세대와 계층 간 이념적 분화가 진행되면서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 46년 만에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국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당마다 당선이 가능한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애함으로써 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의 비율이 10%를 넘어설 전망이며,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정치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늦었지만 한국 사회의 건강성을 위하여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흔히 20세기를 3S(Screen, Sex, Sport)의 시대, 21세기를 3F(Feeling, Fiction, Female)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21세기 사회와 산업 구조는 바로 여성적인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특히 21세기의 정치적 중요 이슈인 여성, 평화, 환경, 사회적 약자(어린이, 노인, 장애인, 외국인)에 대한 문제는 여성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여성적인 의제 설정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정치적 힘이 확대되어야 하며 그 일차적인 책임과 역할은 바로 여성 의원들의 몫이다.

지금까지 남성들이 남성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은 정치에 무관심하다거나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편견을 만들어 왔다. 사실 여성 후보자 중에는 남성보다는 여성을 상대로 한 선거운동이 훨씬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의 적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아직은 여성들이 정치 현장을 낯설어 하거나, 동성 간에 작용하는 배타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의 의기투합 못지않게 여성들에게는 특유의 유대감과 친화성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 유권자들은 유능한 여성 후보자를 바로 보고 그들이 여성 자신을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여성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성계가 여성 의원 목표 비율을 30%로 잡고 있는 것은 정치적 힘의 원천이 숫자에 있다고 하는 현실적 명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의원이 많아진다고 해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머릿수보다는 가치관, 역사관, 세계관을 포함한 기본적 자질과 능력이 더 중요하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정치적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동안 남성 주도의 국회는 여야 간에 순전히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으로 분열을 초래하였고 국민들에게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었지만 앞으로 당선될 여성 의원들은 여성의 삶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생산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남성들의 지배욕 때문에 갈라지고 거칠어진 우리 사회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통합하여 더욱 아름답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는 남성 유권자들도 능력 있는 여성 후보자를 지지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남성들은 이제 여성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게 된다는 낡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 바로 남성도 살기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라는 괴테의 '파우스트'마지막 구절처럼 여성이 한국 정치를 정화하고 국민의 마음까지도 순화시켜 줄 수 있다면 여성이 국회 의석의 절반을 차지한들 나쁠 게 무엇이겠는가.

/송병록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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