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스미디어라는 출판사에서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어 대단한 화제를 몰고 왔다. 이 책은 몇 달 사이 100만 부 가까이 팔렸고,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을 무슨 캠페인 구호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했다. 정작 원서가 나온 일본에서마저 한국의 '대박'에 놀라는 눈치다.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도서 검색란에 '아침형 인간'을 쳐넣고 클릭하면 10권이 넘는 책이 죽 뜬다. 올해 나온 책만 '내가 쓰는 아침형 인간의 노트' '아침형 인간의 24시간 활용법' '아침형 인간을 위한 웰빙 건강법 40' '아침형 인간을 위한 4시간 숙면법' 등이 있다.
심지어 '아침형 아이' '만화로 보는 아침형 아이' '어린이를 위한 아침형 인간 되기' 등 어린이 책에다, 아침형 인간을 위한 음반도 몇 종 나왔다.
웰빙이 유행이고, 계속된 불황 속에 돈 벌기나 자기 혁신이 삶의 지침처럼 됐으니 나태하고 무기력했던 사람이 아침형 인생 설계에 도전해서 나쁠 것도 없겠다. 하지만 그 책의 성공에 기대어 비슷한 제목의 책이 잇따라 나오고, 또 '○○형 인간'을 제목으로 한 책들이 경쟁하듯 쏟아져 나오는 데는 유감이다.
'아침형 인간'에 대응이라도 하듯 '저녁형 인간' '올빼미형 인간으로 승부하라'는 책이 등장했고, 그것도 모자라 '집중형 인간' '정리형 인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자아형 인간'이 줄줄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주에는 일본서 유행하고 있다는 '대충형 인간'을 제목으로 단 책까지 출간됐다. 일본에서는 시간 절약 요리법을 담은 요리책이 잘 팔린 뒤 '대충형 인간'이 화제가 됐다지만, 국내에서는 '단순하게 인생을 설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런 제목을 앞세웠다.
효율적인 생활설계법을 간명하고 호소력 있는 제목에 담아 내는 건 출판 테크닉으로는 중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베껴 대는 풍토는 못마땅하다. 상상력의 빈곤이 안타깝다 못해 '○○형 인간'이 멀쩡하게 잘 살던 삶을 옥죈다는 강박관념까지 든다.
저녁시간에 잘 적응해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주변 정리 잘하고, 매사에 집중해야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는 걸 굳이 책을 읽어서 배우고 알아야 할 건 또 뭔가. 하물며 대충해도 성공한다니. 어설픈 '대충형 인간'이 이렇게 한 마디 할까 걱정된다. "대충 좀 하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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