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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18> 평양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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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18> 평양에 가보니

입력
200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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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판문점을 넘어섰다.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일행은 자유의 집을 지나 판문각에서 북한적십자사 대표들의 환영을 받으며 첫 대면을 했다. 동독에서 구입해왔다는 벤츠를 나누어 타고 개성을 통해 남천, 사리원을 지나 평양까지 가는데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도로에 통행하는 차를 별로 볼 수 없었다. 거리에는 더러 사람들이 보였으나 우리 행차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사리원에서 행진하던 빨간 머플러 차림의 소년단은 우리가 탄 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쪽 분위기와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그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평양까지의 도로변은 온통 빨간 사루비아 꽃으로 뒤덮여있었다.다음날 평양 대동강회관에서 열린 첫번째 회의에서 우리측 수석대표 이범석(李範錫)씨와 아랍공화국 대사를 지낸 북측대표 김태희가 각각 대표연설을 했다. 첫날 회의가 끝난 뒤 우리는 혁명박물관, 어린이궁전, 예술의 극장 등으로 안내를 받았다. 박물관 1층에 들어가자 여성 안내원이 갑오농민전쟁부터 매우 유창한 말솜씨로 소개했다. 미국 상선 샤먼호 사건에 대해서는 대동강에 불법 침입한 것을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할아버지가 주동해 불태웠다고 했고, 3·1운동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민족대표 33인의 이름도 없고 독립선언서도 없었다. 북측의 한 대표는 "3·1운동은 민중이 일으켰고, 소위 민족대표들은 변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8층 가운데 2층을 거의 둘러보았을 때 미국의 유명한 반공주의 외교관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휴전선을 시찰하는 사진에 대해 "미국의 전쟁상인 덜레스란 자가 '원자탄으로 지원하겠으니 이북을 침공하라'고 선동하는 장면이고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그래서 북침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자 남측 대표들은 더 보지 않겠다고 퇴장했다. 우리 일행은 그 옆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 흩어져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북적의 자문위원 윤기복(尹基復)이 접근해오더니 "서 선생은 진짜 적십자인인데 소감이 어떻소"라고 물었다. 내가 "왜 역사상의 훌륭한 영웅들이나 애국자들의 동상은 하나도 없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지도자만 이렇게 하지 다른 사람은 안 하지 않습니까"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김수철이라는 다른 대표는 "관동군의 항복을 받아 2차 대전을 결정적 승리로 마감한 게 김 주석"이라면서 다른 인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평양 시내는 3, 4층 아파트가 새로 건설되어 있었다. 거리는 잘 정돈됐고, 전기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낮에는 모두 일터에 나가 거리에 오가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상과 지하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은 유휴·낭비 없이 모두 당을 위해 가동되고 있다고 느꼈다.

두 번째로 평양을 갔을 때였다. 환영파티에서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웬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60세가 훨씬 넘어보이는 그 여인이 은근히 나에게 "소감이 어떻소"하길래 나는 "평양도 많이 발전했고 서울도 발전했는데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6·25전쟁을 우리가 한 겁니까. 외세에 의해서 한 거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동아일보 주필 송건호(宋建鎬)씨가 자기를 상대하고 있던 북적 대표에게 저 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허정숙(許貞淑) 여사라고 했다. 남한에서 조선민주주의 민족전선 의장을 한 허헌(許憲)의 딸로 북에서 고위직을 두루 거친 그 거물이었다. 그러자 송씨가 큰 소리로 "나는 동아일보 주필 송건호라고 하는데 선생님 동생을 내가 잘 알고 친합니다"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허 여사는 "그래요"라고 한마디 하더니 입을 다물고 굳은 표정이 되었다. 송씨의 실수였다. 그의 이복 여동생 허근욱씨는 북한 체제가 싫다고 애인하고 남쪽으로 넘어온 사람이었다. 한번은 김일성의 외당숙인 강양욱(康良煜)의 초청 만찬에서 그와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북한의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니 "미군이 6·25때 교회를 다 폭격해서 교인이 별로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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