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이 지면에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민심 이야기를 하며 그 첫머리에 꼭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선거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 하나가 늘 판을 주도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지역주의 망령이었다고. 여론조사에선 어떤 유권자도 자신은 절대 지역감정을 가지고 선거하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선거 결과는 언제나 그 반대로 나타났다고. 그러나 이번 17대 선거에서만은 그 부분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그것이 꼭 열흘 전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번 선거에 지역 감정은 표현 그대로 확연히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 같으면 인터넷에서도 지긋지긋했을 지역감정 싸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선거가 시작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의 차이도 없는 몇 가지 정책의 차이를 가지고 벌이는 이상한 형태의 보혁갈등 정도가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모습으로 판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위에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대 야당의 연합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결되며 선거 준비단계에서부터 폭풍이 불었던 것이다. 여론은 빠르게 변했고, 지역감정 같은 것은 거기 어디에도 끼어들 틈도 없이 선거가 시작되었다. 불법선거에 대한 선관위의 효과적이고도 강력한 단속으로 선거운동 모습 또한 전과 달라졌다. 처음으로 우리는 그 동안 선거 때마다 고개를 쳐들고 기승을 부리던 지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나 싶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우리는 그런 희망어린 전망을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시 우리 스스로에게 망령된 죄를 지으려 하고 있다. 지난번 대선 때의 지역감정만 하더라도 "저쪽이 저렇게 하니 우리도 이렇게 하자"는 상대에 대한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선거 막판에 이르러 안으로 더 교묘해지고 다급해진 모습으로 상대에 대한 핑계도 없이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우리는 다시 우리끼리 뭉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식으로 지역 깃발 아래로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감정에 대해 우리 모두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잘 안다. 알면서도 이상한 집단의식에 따라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그 말에 따라 스스로 표의 집결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런 지역감정은 '지역감정을 부추기지 맙시다' 하는 구호 속에까지 지역감정을 실어 그것으로 이익을 볼 집단이 부추기고, 그 집단의 승리로 또 다른 이익을 볼 절반의 언론이 부추기는 것이다.
한쪽은 '아버지 어머니표 향수'를 뿌리며 눈물로 그 지역의 수성을 호소하고, 한쪽은 그 지역의 '든든한 오라버니와 함께 걸어' 민주 영령의 묘역을 찾고, 또 다른 한쪽은 거기에 기름을 부어 표 쏠림의 핑계를 제공하듯 노인 폄하 실언을 했다. 지역감정 문제에서만은 그것을 부추기는 쪽이나 거기에 명분을 제공하는 쪽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언론은 또 그 모든 걸 감성적으로 부풀려 보도하는 식이다. 이번 선거의 지역감정 역시 결국 정치인과 언론이 그들의 필요와 입맛으로 살려내고 조장해내는 감정인 것이다. 이제는 뻔뻔해질 대로 뻔뻔해져 젊은 층의 투표 불참을 유도하듯 투표일의 징검다리를 잘 활용하면 황금연휴를 만들어 투표 않고 놀러 갈 수도 있다는 정보까지 기사로 친절하게 제공하는 언론이 아니던가.
그런 여건 안에 어째 용케도 선거 중반까지 지역감정이 불지 않는다 싶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이렇게 불고 마는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참 씻어내기 힘든 오물을 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망령 같은 지역감정을 막을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 폐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기권하지 않고 투표장으로 가 바르게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돈선거의 모습도 이번에 많이 바뀌지 않았는가. 다른 것 다 그만두고 선거 때마다 판을 휘젓고 진정한 민의를 왜곡 시키던 지역주의 망령을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희석시키기만 해도 이번 선거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제까지 바꾸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새로운 세대들이 바꾸어나가야 한다. 그들이 새로운 투표부대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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