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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월악산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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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월악산 트레킹

입력
200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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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중략)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김소월의 '산유화'에실린 가락처럼, 산에 피는 야생화들은 참 소박하다. 내색하지 않고, 유난 떨지 않고, 저 만치서 봄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게으름뱅이처럼 느릿느릿 찾아온다. 도심 가로수마다 벚꽃의 향연으로 아우성이지만, 산은 이제야 잔잔한 리듬에 맞춰 꽃들을 하나둘 피우기 시작했다. 생강나무꽃, 복수초, 처녀치마, 노루귀, 괭이밥…. 이름조차 생소한 우리 산천의 봄 야생화들이다. 야생화들은 소박한 민초의 삶을 닮았다.

화려하게 봄 행세를 하지 않더라도, 나직하게 피어 오르더라도, 소리없이 우리 산천에 씨앗을 퍼뜨려온 생명줄이 아닌가. 때문에 화려한 축제의 장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는 사색의 장소이다. 그 봄철 야생화를 보기 위해 월악산을 찾았다.

야생화의 진수, 월악산 자연학습탐방로

충북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경북 문경시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월악산(해발 1,097m)은 한반도의 '5대 악산(惡山)'으로 불릴 만큼 험준한 산이다. 백두대간이 소백산에서 속리산으로 굽이쳐 흐르는 중간지점에 맹호처럼 우뚝 솟아 기골이 장대하다. 비경의 진수라 할 만한 암봉과 기암계곡을 추스리고 추스려 한 장소에 모아놓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그만큼 산꾼에겐 인기가 높지만, 일반인들이 도전하기는 만만찮다. '3악'이란 말도 나온다. 예측 불허의 등산로와 후들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터져나오는 '악' 소리다. 하지만 마지막 '악' 소리는 비경 때문이다. 굽이치는 산세와 함께 지천에 깔린 야생화를 보고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험준한 산세에 질세라 야생화가 뿜어내는 힘찬 생명력도 온 몸을 사로잡는다.

고생스런 산행은 질색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힘겹게 오르지 않더라도 야생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트레킹 장소가 따로 있다. 만수계곡을 따라 총길이 2㎞에 걸쳐 자연학습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이곳엔 월악산에서 자생하는 150여종 10만본 이상의 야생화와 나무들이 식재돼 그야말로 정수만 모아 뒀다. 게다가 나무나 야생화마다 붙은 해설판이 500개가 넘어 우리 꽃과 나무들의 생태와 내력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아하, 이게 그 꽃이었구나'라는 말이 절로 새 나온다.

탐방로를 따라 가장 화사하게 피어난 꽃은 역시 진달래였다. 보라빛 진달래의 색조가 화사한 봄을 알리고, 뒤를 이어 생강나무의 앙증맞은 노란색 꽃이 맞장구를 친다.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가 나서 이름 지어진 생강나무의 꽃은 산수유와 흡사한데, 주로 가로수로 조경된 산수유 나무에 비해 산에서 자생하는 것은 대부분 생강나무다.

나무에서 피는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과 달리 다른 봄 야생화들은 땅바닥을 주시해야 한다.산은 아직 이른 봄철이라 꽃들이 만발하지 않았지만, 낙엽과 흙더미 속에서 자그마한 꽃들이 지긋이 피어 올랐다. 보슬보슬한 솜털에 휘감긴 적자색의 할미꽃, 바위틈에서 얼굴을 내민 돌단풍, 수줍게 미소 짓는 듯한 하얀빛의 노루귀, 앙증맞은 보라색 꽃을 피운 댓잎현호색…. 양산을 쓴 듯 피어난 처녀치마도 반갑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금낭화, 노랑꽃창포, 붓꽃, 씀바귀, 산철쭉 등이 줄줄이 피어날 것이다. 철철 넘치는 만수계곡의 물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한바퀴 도는 데40∼50분 정도 걸린다.

영험한 월악산 영봉 등반

아무리 험준하다고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돌릴 수 없는 법. 운무에 휩싸인 월악산의 최고봉 영봉(靈峰)이 저 멀리서 나그네를 부르는데….

덕주골에서 출발했다. 월악산 등반의 가장 일반적인 출발점이다. 덕주산성을 지나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덕주사까지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신록 속에 핀 진달래, 생강나무꽃과 계곡의 물소리가 절묘하게 어울려 발걸음이 가볍다. 덕주사를 지나 30분 정도 더 오르면 보물 제406호로 고려시대 조각된 높이 13m의 마애불을 만난다. 유적 구경도 쏠쏠한 재미다.

가벼운 트레킹으로 코스로는 여기까지가 가장 알맞다. 1시간 남짓 거리다. 다음부터는 그야말로 기듯이 올라가야 하는 험준한 비탈이다. 40∼50계단씩 되는 철계단도 수차례 나온다. 숨이 턱까지 닿을 듯 1시간 정도오르면 960봉에 오른다.

그 다음부터는 주능선길. 한결 완만한 길이다. 야생화들이 지천에 깔려 있어 본격적으로 꽃구경을 할 수 있는 길. 그러나 아직 이곳까지 봄 내음이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노랑제비꽃과 생강나무꽃이 드문 드문 피어나 더디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봄을 알려준다.

30여분 정도 가니 갑자기 눈이 확 뜨인다. 회색빛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암벽인 영봉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신령스럽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꼭대기가 눈앞에 보이지만, 오르는 길이 또 만만찮다. 돌아 돌아 오르는데, 30여분. 정상에선 백두대간의 거대한 줄기가 펼쳐진다. 산맥이 파도처럼 굽이친다는 말이 실감난다. 입이 쩍 벌어진다. /제천=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야생화 트레킹 명소들

가로수 변의 꽃이 아니라, 원시림에서 피어난 꽃을 만나보자. 자연의 위대한 힘이 느껴진다. 고산 지대는 봄이 늦어 4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5월초에 이르면 만개한다.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야생화 트레킹 장소를 소개한다.

강원 인제군 곰배령

야생화 트레킹의 1번지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국내에서 생태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꼽힌다. 원시림 그 자체다. 하늘을 뒤덮는 수목을 지나 해발 1,000m의 고갯마루에 이르면 수천평에 걸친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생화의 보고다. 철 따라 야생화들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다운 화원을 만든다. 야생화 사이로 산나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인제군 진동리의 설피 마을이 트레킹의 출발점. 과거에는 오지중 오지였으나 인근에 양양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길이 났다. 강원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소가 날아갈 정도로 큰 바람이 분다는 쇠나드리분지를 지나면 나온다. 겨울 여행지로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설피는 눈 위를 걷기 위해 신발에 덧대는 일종의 눈 신발로 워낙 눈이 많다 보니 아예 마을이름이 됐다. 설피마을에서 곰배령 정상까지 약 4㎞. 누구나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남북으로는 점봉산(1,424m)과 가칠봉(1,165m)이 솟아 있다.

강원 평창군 금당계곡

금당산(1,173m) 기슭에서 10㎞ 정도 이어진 계곡이다.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에서 대화면 개수 1리까지 평창군 내 열두마을을 지나기 때문에 12개수라고도 불린다. 금당계곡은 원시자연이 보존된 몇 안 되는 청정지역으로 손꼽힌다.

비포장 계곡길을 따라가는 길이 환상적이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급류를 만드는 계곡과 그 주변으로 늘어선 기암절벽 등이 깊고 깊은 오지에 들어선 느낌을 자아낸다. 계곡길 주변으로 다양한 야생화들이 수놓는다. 특히 물가에서 피는 철쭉인 수달래가 유명하다. 계곡 끝 부분인 개수 1리 앞에는 수달래 수천 그루가 무더기로 연분홍색 꽃을 피워 절경을 이룬다.

계곡물은 개수교를 지나서부터는 평창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버들치, 쉬리 등이 뛰어노는 일급수의 물이다. 최근에는 래프팅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관령 옛길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에 놓인 대관령(832m)은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강릉의 해산물과 농산물이 이 길을 통해 영서지방으로 넘어갔던 것. 대관령 옛길은 그 옛날 개나리 봇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바로 그길이다. 아름다운 산세와 계곡, 울창한 삼림과 야생화가 어울린 곳이다.

대관령 옛길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초입의 대관령 박물관에서 대관령의 중간쯤에 있는 반정까지 약 4.3㎞ 구간. 경사가 완만해 가족이 함께 걸을 수 있다. 대관령 고개는 '울고넘는 고개'로도 불린다. 관원들이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자 세상 끝에 당도했다고 눈물을 흘렸고, 떠나갈 때 그동안 들었던 정 때문에 울면서 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경북 문경시 주흘산

문경의 진산 주흘산(1,106m)은 포암산, 월악산 등과 함께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는 산.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절경을 이루고, 곳곳에 형성된 폭포 또한 아름답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다.

주흘산과 서쪽의 조령산 가운데로 난 계곡을 따라서는 사적 147호로 지정된 문경새재 관문이 있다. 해발 520m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때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유명해진 절이다. 트레킹 코스는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 시작해 여궁폭포, 혜국사를 지나 정상에 이르는 길. 하산은 제2관문쪽으로 내려온다.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다양한 야생화를 즐길 수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봄에 피는 야생화 수백가지 넘어

봄철 야생화는 수백가지를 넘는다. 제비꽃 하나만 해도 40종이상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몇가지를 소개한다.

●할미꽃

열매 주변을 감싸는 흰 깃털이 할머니 머리 모양을 닮아 할미꽃이다. 손녀 집을 눈앞에 두고 쓰러진 할머니의 넋이 피어난 꽃이란 전설도 전한다. 하지만 적자색의 꽃은 여느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

●복수초

이른 봄 숲 속 그늘에서 피어나는 노란색 꽃.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사이에서 피어난다고 해서 설련화, 얼음새꽃이라고도 한다. 한낮에만 꽃잎이 벌어지고, 추운 밤에는 꽃잎이 오므라든다.

●제비꽃

봄 철 제비가 찾아 올 때쯤 핀다고 해서 제비꽃이다. 4∼5월 양지바른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높이는 10㎝ 내외. 이 꽃이 필 때쯤 오랑캐가 쳐들어왔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린다.

●금낭화

복주머니 모양의 꽃이 기울어진 줄기 끝에 조롱조롱 달려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꽃 모양이 여자들 옷에 매다는 주머니를 닮아다 해서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불린다.

●돌단풍

봄철 산의 개울가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꽃. 잎 모양이 단풍잎과 비슷하고 바위틈에서 자라 돌단풍이라고 한다. 줄기가 30㎝ 정도로 곧게 자라며 흰색꽃이 촘촘히 모여 전체적으로 고깔 모양의 꽃송이를 만든다.

●현호색

위는 긴 고깔, 아래 끝은 입술처럼 생긴 독특한 꽃이다. 5∼10송이가 줄기 끝에 모여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4∼5월 산의 낮은 지대에서 핀다.

●매발톱꽃

위로 뻗은 긴 꽃뿔이 매의 발톱처럼 안으로 굽은 모양이어서 매발톱꽃이다. 꽃이 연한 황색인 것은 노랑매발톱, 보라색인 것은 하늘매발톱이다. 6∼7월에 산골짜기의 계곡가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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