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진출한 외국 자본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보다는 투자금 회수를 앞세워 재산처분 등 무리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증권산업노조(위원장 이정원)는 13일 증권거래소에서 브릿지증권 노조 등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외국계 투자펀드 BIH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평가액 790억원인 사옥을 714억원에 헐값 매각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증권노조는 또 이 같은 국내 진출 외국자본의 자본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금융 감독 당국 등에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브릿지증권 황준영 노조위원장은 "BIH가 자본금 688억원과 자기자본 3,600억원을 유지하고 있는 우량한 브릿지증권을 기업의 존속마저 위협하면서 자본 유출에만 전념하고 있다"며 "98년 3월에 국내 진출한 이후 수 차례 대규모 배당, 감자, 합병 시 주식매수 청구 등의 방법으로 647억원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유상 감자 등을 통해 1,200억원을 빼돌리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브릿지증권 노조는 지난주 대주주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며, 파업 결의 등을 통해 건물 매각과 유상 감자 추진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브릿지증권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이 같이 유상감자를 통한 투자금 회수 사례는 브릿지증권이 처음이 아니다. OB맥주의 지분 95%를 소유한 벨기에 인터브루사는 지난달 30일 자본 유상소각을 통해 1,600억원의 돈을 회수했으며, (주)만도의 대주주인 JP모건도 지난해 12월 자사주 무상소각과 주주지분 유상소각을 통해 514억원을 회수했다.
이처럼 국내기업의 성장 여력은 도외시한 채 대주주의 단기이익을 위한 감자를 잇따라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제지하거나 감독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대안연대회의 이찬근 교수(인천대학교 무역학과)는 "이번 브릿지증권 문제는 국제 금융자본의 예외적인 투기행위라기 보다는 세계경제에 보편화한 경제전반의 투기장화의 예고편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국내 증시에 투입된 외국자본의 약 95%가 단기간의 투자이익을 노린 투기자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투자이익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실현하려는 주주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영미식 기업지배구조가 실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대주주의 감자나 정리해고 등을 제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