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가 악화되면서 추가 파병 문제가 총선의 막판 쟁점으로 부상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파병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거나 아예 파병 철회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35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 반대 비상국민행동'도 본격적으로 파병 철회 운동에 나서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파병이고 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아무리 명분과 실리가 중요하다 해도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병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제일 중요한 변수는 국민 여론 수렴인데 이는 파병 예정지의 안전도와 직결된다. 사실 저강도 분쟁이 전 이라크로 확산되고 있는 정황으로 보아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 장병들의 안전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현재 파병 예정지로 알려진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아 두 곳 모두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지역은 1991년 이래로 쿠르드족 자치구에 편입되어 비교적 친미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또한 현재 반미 저항세력으로 부상되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영향력도 이 지역에서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같은 쿠르드 지역이라도 사담 후세인이 이주시킨 수니파 주민과 갈등관계에 있는 쿠르드족이 혼재해 있는 모술이나 키르쿠크와는 달리 두 곳 모두 안정되어 있다. 아르빌은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드민주당 관할 하에 있고, 술라이마니아는 탈라바니가 주도하는 쿠르드애국동맹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둘 중 어느 곳에 파병해도 우리 장병들에 대한 위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분도 문제가 된다. 두 지역 모두 이라크전으로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는데 평화와 재건을 명분으로 3,600여명의 한국군을 파병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오히려 이 지역이야말로 평화와 재건의 명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후세인 집권 기간에 가장 처참하게 희생되고 소외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아니라 후세인 정권에 의해 피폐화된 지역의 재건에 참여하고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실리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에 대한 파병은 우리의 의사가 아니라 미국측 요청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동맹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라크 산유량의 3분의 1이 쿠르드 지역에서 나온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제적 실리도 기대해 볼 만하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이라크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 지역이 내전에 휩싸일 수도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터키, 이란 등 주변국들과 마찰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파병 기간이 그리 길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튼 우리 조사단이 현지 조사에 나섰으니까 결과를 기다려 보자. 그리고 현 추세대로라면 파병 시기가 6월까지 순연될 수 있고, 그 즈음이면 주권 이양과 미군의 거취 문제 등 이라크의 향후 전망에 대한 구체적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그 때 가서 파병 문제를 쟁점화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문정인/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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