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쫑호야! 후지산도 퍼떡 넘어라 카이."13일 2004프로야구 LG―삼성전이 열린 대구구장. 3회 첫 타석에 삼성 2번 타자 박종호(31)가 들어서자 "박종호∼!"를 부르짖는 함성이 달구벌을 뒤덮었다. 기록 달성의 희생양이 될 박종호의 친정 팀 LG 선발은 지금까지 5번 상대해 1안타(타율 2할)만을 허용한 우완 김광삼(24).
유격수 플라이아웃으로 1회 첫 대결에서 패배한 박종호는 오히려 침착했다. 볼카운트 1―2에서 날아온 김광삼의 4구는 142㎞짜리 직구. 흔들리던 박종호의 방망이가 돌아갔고 '딱∼!' 소리와 함께 장내는 침묵에 빠졌다. 좌익선상을 따라 쏜살같이 날아간 공은 넘어지는 LG 3루수 김상현의 글러브를 맞고 튀는 절묘한 강습 내야안타가 됐다.
1루 베이스를 밟은 박종호의 낯에 환희의 미소가 떠올랐다. 1999년 롯데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갈아치우는 32경기 연속 안타였다. 지난해 8월29일 두산전에서 현대 유니폼을 입고 시작한 박종호의 안타행진은 진행형이다. 이제 매 경기 박종호가 때리는 안타는 역사다.
79년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보유한 일본 및 아시아 기록 33경기 타이도 코앞이다. 14, 15일 LG전에서 모두 안타를 때리면 4반세기 동안 지속된 아시아 기록을 뒤엎으며 지난해 '아시아 홈런킹' 이승엽에 이어 '아시아 연속 안타 제조왕'으로 우뚝 서게 된다.
꿈이 좌절될 뻔한 적도 있었다. 9일 한화전에선 9회말 마지막 타석 볼카운트 2―1로 밀린 상황에서 중전안타(29경기)를 뽑아내 본인도, 팬들도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연습벌레'로 소문난 박종호는 "아시아기록을 넘고싶은 욕심은 있지만 긴장을 늦추면 모든 게 끝나기 때문에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팀도 LG를 11―7로 이겼다.
문학에선 오랜만에 마운드가 제 몫을 한 기아가 4회 김상훈의 2루타 등을 엮어 3점을 뽑아 SK를 4―0으로 꺾고 5연패 사슬을 끊었다. 수원에선 현대가 송지만의 좌전 끝내기 안타로 롯데에 8―7로 역전승했고, 잠실에선 두산이 한화를 7―4로 눌렀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삼성 박종호는 누구/5년연속 100안타 최고 스위치히터
삼성 박종호는 국내 프로야구가 보유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간 문화재' 중 하나다. 투수에 따라 오른쪽, 왼쪽 타석에 골라서 들어설 수 있는 스위치히터. 국내에는 두산의 장원진, 롯데 최기문 등이 있지만 기량에 관한 한 박종호가 단연 발군이다. 2000년 59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는 박종호는 그 해 스위치히터로는 최초로 타격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1992년 LG 입단 이후 98년 현대를 거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올 시즌 삼성 유니폼을 갈아입기까지 박종호의 13년간 통산 홈런숫자는 고작 59개. 박종호는 화려한 장타력은 없지만 9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00안타와 50타점을 기록할 만큼 천부적인 타격감각과 기복없는 플레이를 과시해 왔다.
'마의 31' 벽을 넘어선 박종호와 '31'이라는 숫자와의 질긴 인연도 화제다. 올해 나이 31세인 박종호는 현대로 트레이드되던 98년 처음으로 등번호 31을 달면서 묘하게도 그해 타율 3할1리를 때려내 생애 첫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이듬해 박종호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하나 보탰다. 그 해 정확하게 31번 몸에 볼을 맞는 수난을 당하면서 세운 한 시즌 최다 사구(死球) 기록이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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