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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역사 바꾸는 한 표 행사를

입력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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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나이 70의 아버지를 지게째 산 속에 버리고 돌아서자 따라왔던 손자가 지게를 챙겼다. 까닭을 물었더니 "저도 아버지가 70이 되면 이 지게로 져다 버리려고요"라고 대답했다던가. 하지만 우리 농경사회엔 이런 풍습 자체가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삼국 시대 이래로 벼슬에서 물러나는 나이는 70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70이 넘어서도 정사를 계속 맡아야 하는 일품 이상에게는 팔걸이와 지팡이를 하사하여 성대한 궤장연(쌳杖宴)을 베풀었다고 한다.요즘 새삼스럽게 '변화가 희망'이라지만 자고로 사람들의 '변함 없는 희망'은 불로장생이 아닐까. 나이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장수야말로 특별한 축복이다. 다행히 우리의 평균수명이 76세를 넘었다. 희수연마저 마다하고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잔다. "구구! 팔팔!!"을 외치며 건배하는 시대가 됐다.

고령화 사회라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어떤 이는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80대, 90대가 묻더란다. "우린 투표해도 되나?" 노인 폄하 발언 덕분에 오히려 노인이 대접받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 탄핵도 마찬가지다. 탄핵 찬반 여부를 떠나 이번 총선 과정에서 대통령이 완전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불행인가 다행인가.

공교롭게도 4월 15일은 링컨이 타계한 날이고 김일성의 생일과도 겹쳤다지만 1960년의 남북한을 비교해 보면 순간의 선택은 4년이 아니라 역사를 좌우한다는 사실이 극명해진다. 45년 이후에도 남한보다 잘 살았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금과 같은 처지로 쇠락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세계를 둘러보면 시시콜콜 간섭하는 통제 사회가 아니라 자유사회가 발전했다. '보이는 손'이 지배하는 간섭사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자유사회라야 장수한다. 진보와 보수, 분배와 성장,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사회의 기틀은 작은 정부와 준법정신이다. 거창한 선거 공약은 엄청난 세금과 거대 정부를 의미한다. 입법부의 전문가인 국회의원에게는 무엇보다도 투철한 준법정신이 요구된다.

이제 선택의 날이 다가왔다. 투표(投票)에 해당하는 영어의 vote에는 소원과 서약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귀중한 한 표를 던지거나 버리지 말자. 후손의 번영을 희망하여 자유사회 실현을 냉철하게 맹세할 순간이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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