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웃찾사'의 '병아리 유치원'(사진)은 버르장머리 없는 코너일지도 모른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사실 아이라기보다는 조폭에 가깝다. 그들에게 딱지는 돈이고, 요구르트는 술이다. 그래서 딱지로 일수장사 하는 옆 반 유치원생도 나오고, '동네 놀이터'에서 부킹을 담당하는 웨이터 어린이도 등장한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영락없는 조폭 코미디다. 아무리 성인 개그맨이 연기를 하지만, 유치원생들이 조폭 흉내를 내니 언짢을 수도 있겠다.하지만 '병아리 유치원'는 그래서 재미있다. 사실 아이들이 100% 순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초등학생이 인터넷에서 어른 뺨치는 욕설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게 요즘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되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병아리 유치원'은 그걸 슬쩍 조폭의 이야기로 풍자한다. 그래서 아이가 순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통해 조폭세계를 풍자하는 것처럼 포장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나마 불편하지 않게 아이들의 타락(?)을 즐길 수 있고, TV에서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거친 조폭 코미디 역시 순화된 모습으로 포장되어 시청자를 웃긴다. 모두 알고는 있지만 차마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주기는 불편한 것들을 살짝 비트니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타락토비'도 이와 비슷하다. 순수한 동심이 타락하는 모습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 현실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어린아이 대신 동심을 상징하는 텔레토비가 등장해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저 아이가 어른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말하기는 껄끄럽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어떤 진실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다.
이는 '웃찾사'의 '고운말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이 코너에서는 숱한 욕설들과 특정상표 이름들을 조금씩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개'나리나, '조'끼같은 단어들이 등장하고, '롯데 월드콘'은 '롯헤 월음훼'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별다른 소재 없이 방송부적격 언어들을 살짝 바꿨을 뿐인데도 웃긴다. 그게 어떤 단어를 뜻하는지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뻔히 알고 있는 그런 말들을 바꿔 말할 수 밖에 없는 방송의 특성을 알고 있기에 그 단어를 상상하며 웃게 된다. 공중파 TV에서 욕설이나 특정상표가 마구 등장하면 그것에 웃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한번 살짝 비틀면 유머가 된다.
정치의 계절을 맞이해서인지 요즘에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수 없는 '막말'들이 쏟아진다. 어떤 이는 말해놓고 수습하느라 바쁘고, 또 다른 누구는 내 생각을 말한 것 뿐이라며 당당해 한다. 물론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듣는 사람들까지 불쾌해지는 말은 하나마나 한 것 아닐까. 같은 생각이라도 얼마든지 부드럽게, 그러나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다. 상대방을 사정없이 물어 뜯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전에 자신이 내뱉는 말의 품위부터 지켜야 하지 않을까. 요즘 그들이 서로를 할퀴며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 흠집 내는 기술이 아니라, TV 개그프로그램이 가르쳐주는 '최소한'의 교양과 유머인 듯 하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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