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수행에 대한 서구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물질문명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고'는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의 선(禪) 이야기다.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선을 쉽고도 재미있는 만화로 그렸다.루마니아 출신의 저자 이오안나 살라진은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 여러나라에서 만화와 그림을 발표하면서 몇 년씩 살았다. 현재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22년째 살고있는 그는 젊어서부터 요가, 명상에 심취했으며 이 책은 잡지 '코스믹 페이퍼'에 '젠 코믹스'라는 타이틀로 연재한 만화를 묶은 것이다. 번역은 작가 안정효씨가 했다.
만화는 노스님과 제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심각하고 진지하고 무겁기 보다는 가볍고 유쾌하고 밝게 그리고 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묻는다. "깨달음을 얻은 자와 미망 속에서 사는 자는 죽은 뒤에 어떻게 되나요?" 스님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제자가 "스님은 깨달음을 얻으셨잖아요?"라고 채근한다. 그러자 스님은 "아직 죽지 않았잖아"라고 응수한다.
이번에는 스님이 제자들에게 설법을 한다. 그런데 한 제자가 "말씀을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요"라며 넌지시 딴죽을 건다. 가만 있을 스님이 아니다. 스님이 "좀 더 가까이 오지 않겠니? 여기 내 옆에 앉아라"고 말한다. 제자가 옆에 앉자 "봐라! 넌 내 말을 이해하고 있잖아"라고 일갈한다.
한번은 한 제자가 스님에게 삶의 비밀을 찾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스님에게도 삶의 비밀을 찾았느냐고 슬쩍 물어본다. 스님이 찾았다고 말하자 제자가 "그것이 무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에 스님은 "비밀이라서 가르쳐줄 수 없다"고 대응한다.
또 스님은 제자에게 "'너'와 '내'가 존재하는한 길은 보이지 않는단다"고 가르친다. 장난을 좋아하는 한 제자가 "그럼 스님하고 제가 없어지면 그때는 길이 보이나요?"라고 묻는다. 돌아온 스님의 대답. "너하고 내가 없어지면 누가 길을 보겠니?"
괴짜이면서도 지혜가 많고, 그래서 인상이 더욱 깊게 남는 스님은 반어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로 도의 주변에서 헤매는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한다. 스님은 가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제자를 가르치지만 무섭기는커녕 정겹기만 하다. 4컷 또는 8컷 정도의 짧은 이야기 100편을 모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곳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노스님과 제자의 모습을 담은 묵선(墨線)에 동양의 곡선미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들녘 펴냄. 7,000원.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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