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들이 몰려온다. 일본 현대영화를 대표하는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가 23일 한꺼번에 선을 보인다. 낯익은 배우도 만난다. '일본의 안성기'로 통하는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과 '강령'에서,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는 '고하토'(감독 오시마 나기사)에서 열연한다.
이마무라 쇼헤이(78) 감독의 75세 때 작품인 '붉은 다리…'는 한 편의 축제 같은 영화다. 힘차게 꿈틀거리는 장어, 한껏 만발한 벚꽃, 질투에 눈이 멀어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 거침 없이 삶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감독의 세상은 숨막히는 도시의 일상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짐작하겠지만 '다리'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다리' 아래서는 생명이 약동하고 모든 것이 꽃핀다.
실직한 중년 가장 요스케(야쿠쇼 코지)는 '거지 철학자'로 불리는 친구 타로를 찾아 위로의 말을 들으려 한다. 그러나 타로는 "붉은 다리 아래 강이 흐르는 어촌이 있다. 붉은 다리 옆집의 광에 보물단지가 있다"는 이상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요스케는 붉은 다리 옆집에서 성적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고생하는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난다. 섹스를 할 때마다 분수처럼 물이 솟구쳐 하수구로 흐르고 그 물이 마침내는 강까지 데운다는 이야기는 황당하다. 그러나 마치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는 듯한 야릇한 마술적 사실주의가 마음의 파장을 흔든다. '우나기'에서도 함께 나왔던 야쿠쇼 코지와 시미즈 미사의 연기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전편에 흐르는 활기다. 영화는 거지 철학자 타로의 입을 빌려 "네 욕망에 충실하게 살라. 그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전한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우나기'(1997년)와 '나라야마 부시코'(1983년)보다 성적으로 더 풍요롭고 질펀해 졌지만, 그것이 천하지 않은 것은 밑바닥에 흐르는 인본주의 덕이다. 젊은 날 '복수는 나의 것'(1979) 등에서 폭력적인 섹스와 살인 충동을 그렸던 감독은 그 충동을 타인과 세계를 향한 사랑과 교류의 열망으로 바꿔놓았다. 18세 이상.
'고하토'는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오시마 나기사(72) 감독의 99년작.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섹스에만 집착하는 서민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려냈던 노장 감독이 이번에는 사무라이의 동성애라는 독특한 소재에 도전했다. 최근 한국에서 회고전을 가진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 '하나비' '자토히치' 등을 연출한 기타노 다케시가 남색(男色)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눈길을 끈다.
무대는 1862년 일본 교토. 새로운 사무라이를 뽑는 대회에 미소년 검사 카노(마쓰다 류헤이)가 홀연히 등장한다. 봄날 벚꽃 흩날리는 교토의 황홀한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 교토 최고의 사무라이 집단 '신선조'에 입단한 카노에게 많은 남자들이 접근한다.
강렬한 눈매의 청년 타시로(아사노 다다노부)부터 '신선조'의 총장 콘도(최양일)와 서열 2위 히지카타(기타노 다케시)까지. 나이가 많건 적건 가리지 않는다. 카노를 독차지 하기 위한 사무라이들의 내부분열과 음모가 마치 일본 단가처럼 상징적이다. 15세 이상.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함께 일본 영화의 기린아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강령'과 '밝은 미래'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강령'은 선한 중산층 부부의 악한 잠재의식을 스릴러 기법으로 파헤친 작품이며, '밝은 미래'는 미래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스물 네 살의 청년 이야기를 통해 감독 특유의 돌발적인 상상력을 구사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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