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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의 총선 民心속으로/영남·수도권 표심-탄핵風·朴風 서울서 대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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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의 총선 民心속으로/영남·수도권 표심-탄핵風·朴風 서울서 대치중

입력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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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을 한바퀴 돌아왔다. 북상하는 벚꽃을 따라 창원과 부산, 울산을 거쳐 경주에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경남과 부산, 울산, 경북을 다녀온 셈이다. 그러나 도무지 정치의 계절 같지가 않았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흥분과 긴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다 '탄핵'을 계기로 이탈한 사람들일수록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탄핵'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서울의 촛불시위 참가자들과 전혀 달랐다. '6월항쟁세대'와 '붉은악마세대'가 주축인 촛불시위 참가가들이 탄핵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정치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반해서 이들은 어기지 말아야 할 도리를 어긴 윤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탄핵을 비윤리적 행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대통령을 '나랏님'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어떻게 나랏님을!' 바로 여기에서 한나라당의 계산착오가 발생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남사람들의 정서에는 노무현대통령이 '나랏님'답지 못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랏님'답게 표정도 감추고 말도 아끼면서 손 볼 것은 조용히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깨끗하게 손을 보아야 했다. '권위'와 '위엄'을 갖춘 지난 시절의 대통령들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랏님'답지 않게 얼굴에 감정을 완전하게 노출시키며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불만이었던 이들에게 '나랏님'을 탄핵하는 일은 더욱 용납할 수 없는 불충이요, 패륜행위였다.

썰물처럼 한나라당을 빠져나갔던 영남민심은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의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을 계기로 급선회하고 있었다. 우리당의 우세지역이 경합과 열세로 바뀌는 곳이 줄을 잇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충'을 범했다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한나라당은 정의장이 범한 노인들에 대한 '불효'를 불씨 삼아 맞불을 놓는데 확실하게 성공하고 있었다. 우리당의 후보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간부들은 영호남의 동시 승리를 통해 전국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총선의 이슈를 '불충'에서 '불효'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한 한나라당은 '거여견제론'과 후보자 개인에 대한 '인물론'을 양 날개로 부상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이미 한나라당이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고 아직 우리당 우세지역이 일부 남아있는 부산·경남도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상황이 역전될 곳이 대부분이었다. 영남에서 지역감정이 제일 약한 울산에서마저 우리당은 수세를 면치 못했다.

경주에서 출발한 서울행 버스 안에서 내내 아쉽고 씁쓸했다. 이번 총선을 통해 지울 수도 있었을 지역주의의 그림자를 지워내는데, 적어도 영남에서는 완전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정동영 역효과와 맞물리며 상승하고 있는 박근혜 효과의 실체도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향수와 직결되어 있다. 박정희의 통치언어와 스타일이 '나랏님'다운 것으로 기억하는 한 노대통령의 그것은 지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노대통령은 앞으로도 영남민심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효과가 북상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며칠사이 서울의 민심도 많이 바뀌어 있다. 와병중인 강남의 한 인척은 이번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지만, 과거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할 강남지역의 투표의지는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서울은 여전히 '탄핵' 사태를 용납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행위로 간주하고 있는 30대와 40대가 강남까지 북상한 박정희향수와 대치하고 있다. 독재시대의 어두운 기억과 6월항쟁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 세대의 정치적 태도는 강남의 정치적 태도 못지 않게 완강하다.

결국 이번 선거는 권위주의 시대의 정서를 더 깊이 내면화하고 있는 50대와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20대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제 1당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승부는 수도권에서 갈릴 것이다.

방현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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