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은 '미디어 선거'의 시험대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 탄핵사태를 부른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 파문, 엄격해진 선거운동 규정 등으로 금권·관권 선거가 설 땅이 좁아지면서 유권자들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부각됐다. 그러나 투표일을 이틀 앞둔 지금, 결과는 어떤가. 전문가들은 돈 적게 드는 선거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한 편에서는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고 평가한다.이미지 선거 조장
11일 밤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눈물과 망각'이라는 리포트에서 정당들이 너도나도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을 쓰면서 정책 대결이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감성 정치'가 판 치게 된 데는 정책에 대한 분석, 평가보다는 각 당 지도부의 행보만 쫓고 이들의 '눈물 쇼'에 카메라를 들이댄 언론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총선미디어감시국민연대가 3, 4일 지상파 TV 3사의 선거보도를 분석한 결과 총 43건 중 53%(23건)가 각 당과 지도부, 출마자의 동정 소개였다. 총선미디어연대는 "양 방송사가 정치권의 이미지 선거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이를 조장할 우려가 있는 동정보도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MBC는 내용 면에서도 흥미를 자극하는 연성 보도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도 12일 낸 선거뉴스 모니터에서 "MBC는 '이미지 정치 허와 실'(3월29일)에서 이미지 정치를 비판했지만, '정치인 눈물 공방'(3월31일), '유권자 시선을 잡아라'(1일) '이색홍보 백태'(2일) 등 흥미 위주의 보도가 여전했다"고 지적했다.
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총선미디어연대는 "대다수 신문들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간 세(勢) 대결을 주로 부각시키고 있다"면서 "특히 지역 르포 기사에서 지역 주민의 감정적 발언을 여과 없이 인용해 이를 전체 민심과 등치시키거나 지역 구도를 고착화해 지역주의를 은근히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보수 신문―방송의 감정 싸움
일부 보수 신문과 공영방송의 상호 비방전도 '건전한 비판'을 넘어 '추악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비방전은 지난 주말 절정을 이뤘다.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은 9일 '언론매체의 선거보도 태도 분석' 리포트에서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사진 속 표정 등을 비교하면서 "사진들이 왜곡되고 의도가 담겨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12일자에 한 면을 털어 이 프로그램이 같은 날 방송에서 엉뚱한 사람을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오인한 사건과 함께 대서특필했다. 사설에서도 "'신강균…'의 목적이 거짓과 왜곡으로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훼손하고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비아냥거렸다.
MBC는 또 11일 방송된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 사설 제목과 일부 내용을 보여주면서 "조선일보는 또다시 권력을 꿈꾸는가. 선거 때마다 보여준 선거 개입이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다"고 원색 비난했다. 언론사간 상호 비평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양측이 전파와 지면을 동원해 상대방 흠집내기에 골몰하고, 이를 '국민의 알 권리' 충족으로 포장하고 있는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싸움이 총선에서의 여야 대립과 맞물리면서 마치 정치권의 대리 전쟁을 치르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진로 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는 "여야의 대립이 언론에도 투사돼 일부 신문과 공영방송이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헐뜯고 있는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미디어 선거가 선거문화 개선에 이바지 하려면 신뢰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서로 상대방의 부분적 단점을 침소봉대하는 보도만 되풀이하고 있다" 면서 "선거는 미디어를 원하고 있는데, 미디어는 선거를 도울 자질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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