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누구인가상반기 개봉 한국영화 20여 편 중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나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4∼5편을 제외하고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다. 우선 9일 개봉한 춤 영화 '바람의 전설'은 박정우(35)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제가 됐다. '마지막 방위' '키스할까요'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특사' 등 만화적 상상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코미디가 모두 그의 시나리오 작품이다. 1990년 정지영 감독의 연출부를 시작으로 13년 가까이 충무로를 지켜온 그는 '바람의 전설'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5월5일 개봉하는 '효자동 이발사'는 소심한 이발사(송강호)가 대통령의 머리를 깎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 송강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본 가장 놀라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바로 임찬상(35)감독 자신이다. 영화아카데미 13기 출신으로 단편 '사라지는 모든 것에 보내는 노래'와 '터널', 장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출부를 거쳐 1년 여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쓴 시나리오로 관객을 찾아간다.
차인표 조재현 주연의 '목포는 항구다'의 김지훈(33) 감독도 대표적인 '준비된 신인'이다. 98년 단편 '온실'로 그 해 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이어 '여고괴담' '질주' '비밀'의 조감독 시절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았다. '목포…' 촬영을 위해 2년여 동안 목포에 살다시피 하며 현지 '주먹'들을 차례로 인터뷰했을 정도로 노력파. 그는 "단편시절부터 좋아하던 인간에 대한 고찰이나 리얼리즘이 들어간 영화, 또는 사람들간의 감정 변화를 살린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15일 개봉하는 미스터리 범죄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쓰고 연출한 최동훈(33), 유쾌한 여자사기꾼의 코미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배형준(37)도 조감독 시절을 오래 거치며 데뷔의 꿈을 키워왔다. 6월 개봉하는 '나두야 간다'의 정연원(39) 감독은 일본영화학교를 졸업, 니혼TV의 드라마 '우리나라' 연출 및 한국영화 '봉자' 조감독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
우리는 달라요
요즘 신인감독은 이미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 0순위'로 꼽혀온 인물이 대부분이다. 한때 해외유학파나 각종 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 작품 한편만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 영화제작사 씨네월드 정승혜 이사는 어디서 뚝 떨어진 감독이 아니라고 했다. "한때 제작자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갖게 했던 해외 유학파의 작품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이제는 감독의 '경험철학'을 우선시하게 됐다. 껍데기보다는 감독의 알맹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박정우 최동훈 김지훈 등 올해 데뷔한 감독 대부분은 시나리오를 통해서건, 조감독을 통해서건 현장경험을 통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현장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이들을 '프로듀서 시스템이 배출한 1세대 신인감독'이라고 분석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감독의 세대교체는 도제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4, 5년전부터 PD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감독은 연출만 신경 쓰고 나머지 배우섭외와 스태프 관리, 제작비 책정 등은 PD가 알아서 한다. 이 같은 PD시스템에서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는 통상 2년 정도가 걸리므로 요즘 데뷔감독은 2, 3년 전부터 PD시스템이 키워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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