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가로 지르는 77번 국도를 따라 들어선 안면도는 푸근하고 느긋해 보였다. '편안한 섬'이라는 이름처럼 꽃과 바다, 안면송으로 불리는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휴식장소로 전국 어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백사장에서 삼봉, 꽃지 등을 거쳐 바람아래까지 모두 12개의 해수욕장이 이어져 특히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후로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져 대학생들의 MT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그러나 그런 느낌도 잠시. 백사장 항구 입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며 들른 해수욕장은 군데군데 돌이 드러나 흉한 모습이다. 산속 풍경 좋은 곳에는 서양식 뾰족지붕의 펜션들이 진을 치고 있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편의시설 명목으로 안팎에서 이뤄지는 각종 '난개발'로 안면도가 망가지고 있다.
자갈밭으로 변하는 해수욕장
지난 10일 오후 꽃지해수욕장 주차장. 주말을 맞아 철 이른 바다 경치를 즐기기 위해 찾은 수십대의 자가용차량 사이로 관광버스가 들어오더니 40,50대의 중년 남녀 30여명이 내렸다. 광주에서 왔다는 이들은 곧바로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새겨진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향해 바닷가 옹벽 계단을 거쳐 백사장으로 내려갔다.
순간 50대의 한 중년남자가 "아니 해수욕장이 왜 이래. 모래는 다 어디 가고 돌멩이만 나뒹굴어"라며 혀를 찼다. 옆에 있던 동료가 "백사장이 아니라 완전히 자갈밭이네"라며 맞장구를 쳤다. 지난 2002년 국제 꽃 박람회에 16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후 명성을 얻고 있는 꽃지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자갈밭으로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이 지역의 명소인 할미, 할아비바위 근처에서만 보이던 시커먼 돌더미들이 이제는 백사장쪽으로 100m이상 확대되고 있다. 모래 속의 돌보다는 돌밭속에 모래가 섞여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대학 새내기로 MT를 왔다는 조용웅(20)군은 "TV를 통해 꽃지 해수욕장의 모래유실 문제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심각한 것 같다"며 "돌이 드러나면서 맨발로 백사장을 걸어다니기 힘들정도"라고 말했다.
안면도 입구의 백사장 해수욕장도 해안을 따라 둘러친 옹벽 밑을 중심으로 돌밭으로 변하고 있다. 희고 고운 모래는 간 곳 없고 백사장이 커다란 바위와 자갈로 뒤덮이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안면도내 해수욕장이 흉측한 돌밭으로 변한 것은 해안침식을 막기위해 설치한 옹벽과 지나친 바닷모래 채취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인재' 인 셈이다.
꽃지해수욕장의 경우 1993년∼95년 해안침식을 막고 해안도로를 내기위해 해변을 따라 3㎞가량의 옹벽을 쌓았고 2002년 국제 꽃박람회를 앞두고 보강공사를 벌였다. 옹벽이 설치된 후 꽃지해수욕장은 눈에 보일 정도로 모래가 급속히 사라졌다. 태안반도 북쪽의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 모래가 사라지는 해수욕장은 예외없이 옹벽이 설치돼있다.
한국해양연구원 육근형연구원은 "모래 유실에 대한 정확한 원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내리기는 성급하지만 옹벽설치 후 모래가 줄었다는 현지인들의 면접보고는 참고할 만하다"며 "해수욕장으로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환경복원사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육지에는 펜션 우후죽순
해수욕장이 모래 유실로 신음하고 있는 사이 육지쪽에서는 펜션 등 숙박업소 난립으로 신음하고 있다. 풍광이 좋은 곳에는 예외 없이 펜션형 숙박업소가 들어섰거나 건축중인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꽃지해수욕장 뒷편 산자락에는 산세와 잘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벽에 회색 기와를 얹은 서양식 펜션들이 들어서 손님을 맞고 있다. 바로 옆에는 또 한채의 펜션을 짓기위해 시멘트 골조 공사가 한창이다.
서산 AB지구가 보이는 천수만쪽도 펜션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어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비는 붕기풍어놀이로 유명한 안면읍 황도리 산자락 곳곳에도 펜션이 자리잡고 있다. 마무리공사를 하고 있는 펜션도 3곳. 이 지역은 해수욕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낚시와 갯벌체험 등이 인기를 끌면서 펜션단지로 변하고 있다.
안면도 지역에 들어서는 펜션은 대략 1년에 50∼60개 정도다. 하지만 아직도 중개업소에는 외지인들로 부터 펜션부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하루 2,3통씩 걸려오고 있어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선 펜션 상당수가 경관 보존이나 정화조 시설 등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숙박시설 보다 다가구 주택 등으로 건축신고를 한 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성수기에는 생활 오폐수가 정화조 용량을 초과해 바다로 유입돼 해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펜션들이 못마땅하지만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유모(69)씨는 "외지인들이 자기 땅에 건물 짓고 영업한다는데 뭐라고 하겄어"라며 "(주민들에게) 큰 이득도 안돼 반갑지 않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섬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각종 개발행위의 폐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태안군에 따르면 지난해 우럭, 놀래미 등 어획량은 8,853톤으로 전년도보다 35%가량 감소했다. 모래에 주로 서식하는 자연산 대하 등의 어획량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수산자원의 보고인 천수만쪽도 방조제 축조 이후 해수 흐름이 약해지고 육상의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수질이 크게 나빠졌다.
또 주택가 펜션으로 이용자들과 주민들간 마찰도 잦다. 펜션 이용자들이 주민들의 생활터전인 갯벌에 마구 들어가 조개를 캐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을 뽑아가기도 한다. 주민들은 젊은이들이 밤늦게까지 기타치고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 삶의 리듬이 깨지기도 한다고 하소연한다.
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이평주(41) 국장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천혜의 자연자원을 가진 안면도가 눈앞의 이득에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며 "결국은 그 부작용이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태안=허택회기자 thheo@hk.co.kr
■"여긴 모래가 쌓이네" / 삼봉·기지포 해수욕장등 포집기 설치후 사구 복원
안면도내 일부 해수욕장이 옹벽을 설치한 후 모래가 유실돼 해수욕장 기능을 상실하고 있지만 백사장에 모래가 쌓이고 사구(砂丘·모래언덕)가 살아나는 곳도 있다.
해안사구는 내륙과 해안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교량적 기능과 폭풍·해일로부터 해안선과 농작물을 보호하는 완충기 역할을 한다. 또 해안가 식수원인 지하수를 저장, 공급하는 기능도 갖고 있어 사구가 훼손되면 자연재해가 커지고 수질과 토양이 오염되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다.
옹벽을 설치한 후 모래가 쓸려나가 자갈밭으로 변하는 꽃지와 백사장 해수욕장과는 달리 삼봉해수욕장은 육지쪽에 모래가 쌓여 볼록한 언덕을 이루고 있다. 삼봉 아래 기지포 해수욕장도 백사장에 모래가 퇴적되면서 사구 면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봉, 기지포 해수욕장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태안해안사무소가 2년전 모래포집기를 설치하면서부터. 모래가 바다쪽으로 쓸려 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공단측은 2002년 6월부터 1m크기의 대나무를 발로 엮은 모래포집기를 육지와 백사장 경계를 따라 지그재그 형태로 3.2㎞ 구간에 설치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최인수(34)씨는 "외국의 사구복원사례를 연구하다 한국 실정에 맞는 도구를 만들기로 하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며 "대나무나 그물 등으로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대나무 발 형태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확인돼 설치했다"고 말했다.
모래포집기의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설치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래가 60∼80㎝ 높이로 포집기 주변에 쌓여 대나무가 푹 파묻힐 정도였다. 모래가 쌓이면서 육지쪽에는 갯그렁 등 사구 식물이 살아났고 사구 면적도 1년만에 7∼8m가 커졌다.
이에 따라 공단측은 지난해에도 2억5,000여만원을 들여 삼봉, 기지포, 안면해수욕장 등 6.1㎞에 모래포집기를 설치했다. 포집기의 효과를 확인한 충남도도 1억원의 예산을 들여 태안반도 북쪽 학암포 해수욕장에 1㎞의 모래포집기를 설치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육근형 연구원은 "단기적인 면에서 본다면 모래포집기의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며 "하지만 사구 복원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태안=허택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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