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충돌설에 의하면 지금의 한반도는 2억여년 전 따로 떨어져 있던 두 대륙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미래의 한반도는 일본열도와 부딪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륙으로 탄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 충돌설은 이처럼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그려주고 있다. 전 세계 지질학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이론 '대륙 충돌설',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서로를 향해 서서히 이동중
'한반도에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매년 약 1㎝씩 수천만년 동안 동쪽으로 이동해 가던 이 땅덩어리 앞에 일본열도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열도도 한반도 쪽으로 연간 2∼3㎝씩 이동해 온 터였다. 피할 곳 없던 두 땅덩어리가 마침내 정면으로 부딪쳤다. 순간 엄청난 힘이 작용하면서 지표는 엿가락처럼 뒤틀리고 구겨지고, 강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진다. 그 틈으로 시뻘건 마그마가 폭발하듯 솟구친다. 지표에 있던 것들은 땅 속 깊숙이 밀려들어간다.
하지만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여전히 밀어댄다. 밀고 밀리는 힘에 의해 땅이 융기하면서 거대한 산맥들이 만들어진다. 이 상태가 수천만년 동안 이어지는 사이 충돌한 두 땅덩어리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하나로 봉합되고 한반도도, 일본도 아닌 새로운 대륙이 탄생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현재 이동 방향과 속도를 고려, 지질학자들이 컴퓨터 모델링으로 예측한 수 천만 년 후 한반도의 모습이다.
지구상의 모든 대륙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지구의 표면인 지각이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져 상대적으로 물렁물렁한 연약권 위를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판들은 움직이다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한반도의 기원을 판들간의 충돌에서 찾는 '대륙 충돌설'에 따르면 오늘날의 한반도는 서로 떨어져 있던 대륙이 충돌해 만들어졌다.
1980년대 후반, 중국 친링―다비산 일대와 산둥 반도의 수루 지역에서 특이한 암석이 발견됐다. 지하 150㎞가 넘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다이아몬드와 코어사이트 등이 지표로 나온 것이다.
초고압 광물로 불리는 이 암석들은 지각에 있던 물질이 맨틀 깊이인 땅속 150∼200㎞까지 밀려들어가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지각 물질은 맨틀 구성 물질에 비해 비중이 가벼워 지하 깊숙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금방 다시 떠오른다. 하지만 위에서 고압으로 누르는 힘이 작용한다면 가벼운 지각 물질도 맨틀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초고압 광물로 변성될 수 있다. 이 힘은 대륙 충돌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등 초고압 광물이 발견됐다면 그 지점에서 대륙 충돌이 일어났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연구 결과 현재의 중국은 2억3,000만년 전 남중국 대륙과 북중국 대륙이 이동하다가 서로 충돌한 후 지각변동을 일으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산둥 반도 일대에서 대륙 충돌이 발생했다면 그 여파가 한반도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대륙 충돌설은 이 의문에서 시작됐다.
충돌대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임진강대가 꼽혔다. 이 곳에서 나오는 암석의 생성 연대가 중국 대륙의 충돌 시기와 맞아떨어져서다. 이에 따라 1993년 임진강대에 대한 연구조사가 시작됐다. 그 결과 고압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석류석 각섬암이 발견됐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등 초고압 광물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기 육괴(땅덩어리)에 속하는 강원도 화천 쪽으로 연구 지역이 확대됐다. 여기서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암석이 속속 발견됐다. 특히 고온에서 만들어지는 백립암이 나왔다. 조사 결과 이 암석들은 두 번의 높은 온도에서 변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역시 기대하던 초고압 광물은 없었다. 지난 2002년에는 충청도 홍성 지역에서 고압 조건을 지시하는 석류석과 옴파사이트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것도 충돌대의 존재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했다.
한반도에도 거대 산맥 존재
한반도 여기저기서 대륙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암석들이 발견됐지만 결정적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륙 충돌설이 한반도 형성의 정설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중국에서처럼 초고압 광물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거대 산맥의 흔적 또한 밝혀져야 한다. 오늘날의 한반도가 대륙간 충돌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땅덩어리끼리 서로 미는 힘에 의해 그 충돌대에 히말라야와 같은 높은 산맥이 형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알프스나 히말라야산맥도 대륙간 충돌에 의해 조성된 것들이다.
만약 한반도가 두 대륙간의 충돌로 빚어졌다면 그 높은 산맥은 어디로 갔을까. 한반도가 충돌기를 지나 안정기로 넘어오면서 대규모 침식작용에 의해 깎여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1㎜씩만 깎여나간다고 해도 100만년이 지나면 산맥의 높이는 1000m나 줄어든다. 깎여진 물질들은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1억8,000만∼1억6,000만년 전 진행된 활발한 조산운동으로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변형됐다. 임진강대 부근의 전곡과 충청도 홍성 남쪽의 대천 지역 퇴적분지는 당시 높은 산맥에서 깎여나간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여진다. 이 퇴적분지에서도 지질학자들은 초고압 광물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만으로는 한반도에 대륙 충돌대가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중국 대륙의 충돌 영향권에 있었던 것 만큼은 확실하다는 게 국내 지질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해 임진강대나 화천, 홍성 지역 암석 연대를 측정해 보면 중국 대륙 충돌 시기와 비슷한 2억3,000만∼2억5,000만년이 나오는 게 근거다.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중국 대륙의 충돌대가 한반도를 지나 일본까지 이어졌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동해가 약 2,500만 년 전 이후에 열렸으니 그 이전에는 일본이 한반도와 붙어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에도 충돌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의 한반도는 정말 서로 다른 대륙끼리의 충돌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해답은 초고압 광물의 발견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조문섭/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서울대 지질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이학박사 미국광물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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