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월12일 해럴드 워싱턴이 시카고 시장으로 취임했다. 흑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시장 취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시카고를 사랑한 시장으로 기억되기 바랍니다. 저는 공정한 시장으로, 적어도 공정하고자 애썼던 시장으로 역사에 기억되기 바랍니다." 해럴드 워싱턴은 공정하고자 애썼다. 그는 시 정부의 인종 다양성을 넓히려고 애썼고,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고용 확대에 힘썼다. 백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 의회는 초기에 워싱턴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으나, 1985년 연방법원의 결정으로 치러진 일부 구역의 시의원 재선거 뒤 그는 다수파의 지지 속에서 '시카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해럴드 워싱턴은 1922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군 복무 중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고, 제대 뒤에 루스벨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노스웨스턴 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었다. 아내 없이 그를 키워준 아버지를 따라 민주당원이 된 워싱턴은 일리노이주 하원의원,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연방 하원의원을 잇따라 지냈다. 그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지내던 1977년 시카고 시장 선거에 처음 도전해 실패했고, 1983년에 다시 도전해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현직 시장 제인 번을 물리친 뒤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 버너드 엡튼을 꺾었다. 워싱턴은 1987년에 시장으로 재선됐으나, 얼마 뒤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수십만 명의 추도객들이 그의 관 앞을 지나갔고, 그의 유해는 그가 성장기를 보낸 시카고 사우스사이드 구역의 오크우즈 묘지에 묻혔다. 원자폭탄 개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네 개의 금메달을 거머쥐며 '갈색 영양(羚洋)'이라는 별명을 얻은 흑인 스프린터 제시 오언즈 같은 사람도 그 묘지에 묻혀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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