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손에 끌려 마지못해 들어선 목욕탕. 뜨거운 물이 싫어 탕 옆에서 쭈빗쭈빗하다가 떠밀리다시피 몸을 담갔을 때 화들짝 놀라며 느꼈던 배신감. 이윽고 몸이 불고 익으면 '이태리타월'로 등짝을 박박 밀어대는 엄청난 힘…. 누구나 갖고있는 목욕의 추억이다. 그 목욕이 이제 신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하나의 웰빙 요법으로 자리잡았다. 탕에 몸을 푹 담그는 전신욕이 지금도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정용 욕조덮개가 품귀를 빚을 정도로 반신욕 붐의 기세도 대단하다. 또 외국영화에서나 보았던 거품목욕이나 소금물 족욕(足浴), 아로마 목욕 등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목욕은 노폐물 분비 기능을 조절해 피부를 싱싱하게 만들어주고 신진대사를 촉진해 '피부로 먹는 보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강남베스트클리닉 권혜석 원장은 "목욕하면 1㎞를 달리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목욕은 체중을 줄이는 효과와 함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온도를 이용한 목욕법
관절통 환자에 효험
미온욕 36∼39도의 미지근한 물에서 하는 미온욕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지근한 물이 피부혈관을 확장해 피가 피부로 몰리고 혈액순환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경희대 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신현대 교수는 "미온욕은 진통·근육이완 작용이 있어 관절통이 있는 환자에게 좋은 목욕법"이라고 말했다. 노인이나 불면증, 고혈압, 동맥경화증, 심장질환, 수족마비가 있는 사람에게도 효과적이다.
만성피로때 효과좋아
고온욕 42∼45도의 뜨거운 물은 혈액 흐름을 순간적으로 촉진해 근육 속에 쌓인 젖산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몸의 면역력을 높이며 열에 민감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활성을 막아준다. 또 지방 속에 축적된 나쁜 찌꺼기나 알코올 등을 제거하고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몸에 활력을 준다. 따라서 육체 노동을 하거나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좋다. 다만 혈액순환장애나 혈압 위험이 있는 고령자는 고온욕을 피해야 하며 목욕시간도 30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
차게 시작, 차게 마무리
냉온욕 냉탕에서 시작해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서 오가는 냉온욕은 면역력을 높이고 피로를 풀어주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분당차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김호준 교수는 "냉온욕은 차게 시작해 차게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뜨거운 상태에서 물 밖으로 나오면 모공이 열려 있어 찬 기운이 들어가서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 새로운 목욕법
하체 장기기능 촉진
반신욕 반신욕은 체온보다 약간 높은 37∼38도 정도의 따뜻한 물 속에 배꼽까지만 20∼30분간 담그는 목욕법. 얼마 전 TV 건강프로그램에서 반신욕의 성공사례를 조명한 이래 각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도입된 이 반신욕은 사실 동의보감에도 나온다. 동의보감에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頭寒足熱)'는 말과 달리 현대인은 두열족한(頭熱足寒)인 상태가 많다.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하체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이를 보정하는 데 반신욕이 좋다는 것이다.
반신욕은 수축된 혈관을 열어 혈액순환을 촉진시킴으로써 혈압을 내리고 몸 속 노폐물을 제거해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가 있다. 특히 하반신의 장기기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 생리불순이나 생리통, 갱년기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좋다. 황& 리 경희한의원 황치혁 원장은 "전신욕은 몸에 열이 많은 소양인이나 땀을 많이 흘리면 좋지 않은 소음인에겐 좋지 않지만 반신욕은 몸으로 들어오는 열이 적어 어떤 체질에든 잘 맞는다"고 말했다.
반신욕은 1주일에 1∼2회씩 꾸준히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간혹 어지럼증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자생한방병원 이성환 진료부장은 "반신욕을 하다가 어지럽다면 오미자차나 녹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소금·녹차·솔잎 등 사용
보조제 이용한 목욕 목욕물에 다양한 보조제를 넣는 새로운 목욕법도 많이 등장했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는 목욕으로는 '소금물 족욕'이다. 38∼40도의 물에 천일염 한 줌(30g정도)을 넣고 잘 저은 다음 30분 정도 천천히 목욕하는 것이다. 더운 물에 발을 담가 따뜻하게 함으로써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몸 속에 쌓인 노폐물이 제거된다. 소금이 신경통이나 관절염,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가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또한 녹차를 목욕물에 넣는 '녹차욕'도 젊은 여성들이 여드름 제거를 위해 많이 하고 있다. 녹차잎을 망에 넣어 욕조에 넣거나 차를 마시고 남은 티백을 5∼6개 모아 욕조에 넣고 5분 정도 지난 후 목욕한다.
어깨가 결리는 사람들에게는 '솔잎욕'이 추천되고 있다. 솔잎에는 다량의 엽록소와 필수 아미노산, 리모넨, 칸펜 등 담즙 촉진물이 들어 있어 요통, 근육통, 어혈 등으로 인한 통증을 가라앉힌다. 200g 정도의 솔잎을 냄비에 넣고 15∼20분 끓인 후 건져내 수건으로 짠 다음 솔잎물을 목욕물과 섞어 목욕하면 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목욕 Q&A
Q 반신욕으로 살을 뺄 수 있다는데.
A 식사로 칼로리를 낮추고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운동을 싫어하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은 반신욕을 자주 하는 것도 살 빼는 데 도움이 된다. 반신욕을 1주에 3번 이상 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지방이 연소되기 쉬운 체질로 변하기 때문에 비만을 막아준다.
Q 목욕은 피부를 깨끗하게 하나?
A 20∼30분 정도의 목욕은 몸에 쌓인 오염물질과 피부 속 노폐물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다. 더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부 표면뿐만 아니라 몸 속까지 따뜻해져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체온 상승으로 땀을 많이 흘리게 돼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그 결과 땀과 함께 모공 속의 노폐물이 밖으로 빠져나가 피부가 깨끗해지고, 부기가 빠지며, 지방이 쉽게 연소돼 살 빠지기 쉬운 체질로 바뀐다.
Q 목욕 중이나 후에 물을 마시면 살이 찐다는데.
A 목욕하면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간다. 목욕 중 운동을 하면 수분 배출량은 더욱 많아져 심하면 탈수 현상까지 일어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목욕을 하려면 목욕 전에 미리 물이나 우유를 마셔두는 게 좋다. 다만 목욕을 하고 나면 위장 활동이 활발해져 목욕 직후 식사를 하면 살 찌기 쉬우므로 목욕 1시간 후에 한다.
Q 목욕 중 오일을 바르면 피부가 좋아지나.
A 목욕 중이나 목욕한 직후엔 체온이 올라가 땀이 난다. 이런 상태에서 오일을 바르는 것은 좋지 않다. 피부가 기름막으로 덮여 땀이 제대로 증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일을 바르고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오일은 목욕 후 몸의 열기와 습기가 어느 정도 없어졌을 때 바르도록 한다.
● 목욕시 주의점
아무리 몸에 좋은 목욕도 잘못하면 건강상의 문제를 낳는다.
공복일 때는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위액의 분비도 왕성해지므로 식전의 목욕은 식욕을 증진시킨다. 그러나 속이 텅 비었을 경우에는 피로가 더하고 속이 거북해지거나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어 삼가는 게 좋다. 식사 후에는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목욕을 하는 것이 소화에 도움이 된다.
갑자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혈압이 오르고 혈관이 수축하는 등 혈관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고혈압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욕탕에 들어갈 때에는 미지근한 물을 무릎 밑→무릎 위→허리→배→어깨 등 심장에서 먼 부위부터 따뜻한 물을 5∼6바가지 정도 부으면서 천천히 몸을 담그는 게 좋다.
술을 마시고 목욕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술을 마신 뒤에는 혈관이 확대돼 있는 상태이어서 뜨거운 물에 자극을 받으면 혈관이 터져 뇌졸중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과격한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에서 오랫동안 목욕하는 것도 금물. 뜨거운 목욕을 하면 더욱 땀을 많이 흘리게 되어 탈진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한 뒤에는 미지근한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하거나 잠시 목을 담궜다 미지근한 물이나 찬 물로 마무리한 뒤 물기를 잘 닦아내는 정도가 적당하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목욕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대로 피부의 호흡 작용이 둔해지고 체온조절과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증세가 악화될 수도 있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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