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아버지, 저, 제 자식들이 받은 편지가 모두 1만통이 넘는군요. 이것들을 빠짐없이 모아 보관해왔습니다."전남 함평군 나산면 삼축리에 살고 있는 박현순(60)씨는 110여년 동안 4대에 걸쳐 가족들이 받은 1만여점의 편지를 대를 이어 애지중지 보관해왔다. 그 편지 중에는 구한말 시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할아버지의 서신 1,000여 점과 일제시대 때 아버지가 주고 받았던 편지 3,500여 점도 포함돼 있다.
"제 할아버지(박봉혁·1873년∼1935년)가 물려준 서신들에는 나라를 잃은 구한말 선비들의 생각과 사상이 담겨 그들이 지녔던 시국관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박씨는 "딱히 통신시설이 없었던 그 시절 피 끓는 선비들이 서로의 의기를 확인한 편지들이라 한 통도 소홀히 하지않고 보관해왔다"며 "편지들을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시며 틈 날 때마다 손질하고 꺼내 보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당대 호남지역의 석학으로 손꼽히던 박봉혁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목숨을 걸고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일제의 억압이 절정에 달했던 1934년에는 우국충정을 담은 '영언전(永言傳)'을 집필한 선비로도 유명하다.
"제 아버지가 남기신 편지들은 가족간에 안부를 묻는 개인적인 내용부터 나라의 운명에 대한 걱정, 학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젊은이의 생활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요."
박씨는 "1,000통에 이르는 할아버지의 편지가 모두 한자로 쓰여져 있어 지금까지 해석을 못한 채 보관해 왔던 것이 아쉽다"며 "조만간 한학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 내용 해석을 의뢰해 100년 동안 묻혀있던 옛날의 기억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