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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家의 사람들/ 피터 콜리어, 데이빗 호로위츠 지음함규진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발행·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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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家의 사람들/ 피터 콜리어, 데이빗 호로위츠 지음함규진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발행·3만3,000원

입력
200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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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초 미국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놓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기부 사실을 알리고 찬송과 감사 기도가 이어졌을 테지만 이 돈이 존 데이빗슨 록펠러(1839∼1937)의 지갑에서 나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재산을 빼앗아 모은 더러운 돈을 당장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비스마르크와 함께 현대를 만든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은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와 더불어 초창기 미국 자본주의를 좌지우지 했던 이 거부(巨富)는 그를 유명인으로 만든 바로 그 재산 때문에 벌써 당대에 '악마' 취급을 당했다. 러셀이 그를 중요 인물로 꼽은 것도 "개인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자의 꿈을 깨뜨렸다"는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2대에서 3, 4대로 이어지면서 가문의 오명은 서서히 거두어졌지만 후손은 '록펠러 왕국'의 일원이 아닌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책은 포드, 케네디, 루스벨트 가문을 해부한 책을 써낸 저자들이 1976년에 낸 책을 완역한 것이다. 77년 삼성문화재단 삼성문화문고 가운데 이 책을 번역한 '록펠러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록펠러와 록펠러 2세를 중심으로 일부분만 옮긴 것이었고 벌써 절판됐다.

카네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년에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록펠러의 정신을 이어받아 록펠러 2세는 경영 일선에서 일찌감치 물러나 록펠러 센터를 설립하고 정치 경제 문화계에 걸쳐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저자들은 이때에 이르러 록펠러가가 단순한 부잣집이 아니라 '왕조'나 '제국'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록펠러 2세의 다섯 아들인 존 데이빗슨 록펠러 3세, 넬슨, 로런스, 윈스롭, 데이빗은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학계, 정계, 재계, 금융계 등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선대에 쌓은 재력과 인적 기반의 덕이었다. 록펠러 4대인 그들의 자녀 21명은 하지만 가문의 이름을 거부했다. 할아버지는 록펠러라는 '왕조'를 만들어냈지만 그것은 오히려 록펠러가와 일반인 사이의 간극만 키웠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로 인해 가문이 분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분열은 영웅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비틀대며 지나치게 평범했다'.

850쪽에 가까운 이 두툼한 책은 이름난 한 가문의 흥망성쇠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비교적 공평한 시각에서 록펠러 가문의 4대를 추적한 저자들은 이 가문의 100여 년이 "그리 서사시답지 않다"며 "스탠더드 오일 설립 이후 록펠러가의 모든 노력은 결국 인간 욕망의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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