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는 공포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중학교 한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남학생과 여학생이 있다. 둘은 반 아이들의 장난으로 함께 도서실을 맡게 된다. 무뚝뚝하고 엉뚱한 남학생은 도서실 일은 거들지 않고 다른 학생들이 읽지 않는 책만 골라 대출한다.
책의 독서카드에는 남학생의 이름이 적힌다. 그리고 그것은 여학생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기도 했다. 부친상을 당해 학교에 나가지 못한 여학생에게 남학생이 집으로 찾아와 대출한 책을 대신 반납해 달라고 부탁한다. 여학생은 남학생이 전학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남학생이 맡긴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10여 년 후, 남학생이 등산 도중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학생은 남학생이 반납을 부탁했던 책의 독서카드를 우연히 보게 된다. 독서카드의 뒷면에는 여학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도서실 일은 하지 않고 빈둥거리던 남학생이 그린 것이었다. 남학생에게 여학생은 첫사랑이었고 여학생에게도 남학생은 첫사랑이었다. 10여 년 만에 발견된 독서카드를 통해,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첫사랑은 비로소 '재발견'된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그 책의 독서카드에는 여전히 그 남학생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출하지 않은 것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단 한 명도 대출하지 않았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는 공포영화다. 적어도 소설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 분명한 나에게는 공포영화가 아닐 수 없다.
김경욱/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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