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일간지에 변호사의 선임 여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90% 이상으로 조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변호사를 선임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판결내용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라는 게 이 기사의 의도다. 사실, 법률전문가의 전문지식을 빌려 판결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이 변호사제도의 본래 취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사는 단순히 통계수치를 사법불신으로 연결짓고 있었다.사실 대다수의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변호사들의 사건 선임비리와 세금 탈루가 드러나고 있고 많은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호사와 판사간 유착의 전형인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의 젊은 판사는 사회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판사들은 사건부담으로 인해 당사자가 법정에서 하는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하고 자르기 일쑤다. 또 검사의 과도한 수사의욕이나 판사의 자의에 의해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사법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중 배심제 도입을 통한 국민의 사법참여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이 방안이 도입된다면 사법불신의 많은 원인들이 제거될 수 있다.
배심제는 누구나 알다시피 일반국민이 재판과정에 참여하여 판결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제도이다. 법을 모르는 일반인이 어떻게 재판에 관여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사건은 일반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판결의 결론은 대부분 사실판단에 좌우되므로 사실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 대법원 판례에는 일반인의 건전한 법 상식과 법 감정, 사회통념이나 거래관행에 관한 검토가 문제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발견된다. 따라서 법관의 판단작용에는 사회통념이나 관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사회의 건전한 가치판단과 통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사회의 상식을 반영하는 사법참여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심제가 헌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헌법상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막기 위해 규정된 것이 아니며 이 규정의 헌법정신은 독립된 사법권을 통해 권력을 견제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법관에게 최종 비토권을 주거나 재판의 지휘권을 맡기는 등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이 확보되는 한 굳이 직업 법관에게만 사법기능을 전적으로 맡길 필연적 근거는 없는 것이다.
혹자는 또 배심제 대신 직업법관과 배심을 혼합하여 재판부를 구성하는 참심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그러나 참심제는 성질상 참심원이 법률문제에 관해 직업법관에게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어 법관이 사실판단과 법률적용을 주도해 버리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재판을 직업법관이 주도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참신원은 지금의 조정위원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배심제가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국민의 사법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다. 사법개혁을 논의하는 목표는 국민을 위한 사법을 실현하기 위해서인데 그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에 의한' 사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반시민이 재판에 관여하는 배심제는 사법권 행사의 남용을 견제하고 사법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 시민적 가치를 반영함으로써 사법결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친숙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것으로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일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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