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보석인 다이아몬드에는 뜻밖에도 피비린내가 숨어 있다. 아름다운 신부의 손에서, 사랑스런 아내의 목에서 황홀하게 빛나는 보석이 피와 살육으로 얼룩진 '저주'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니 그 역설이 끔찍하다. '다이아몬드 잔혹사'(원제 'Blood Diamonds')는 영원한 사랑과 헌신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놓고 벌어진 참혹한 역사와 그 현장의 기록이다.그 무대는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시에라리온 공화국. 다이아몬드 광산이 몰려있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순도가 높은 광맥을 보유한 지역이다. 1930년 영국의 지리학자 폴렛이 여기서 광맥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알릴 때까지만 해도 빛나는 보석들은 쓸모없는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점차 그 수익성이 알려지자 빈곤에 시달렸던 국민들은 광산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탐욕스런 독재자와 기업가들이 끼어들면서 분쟁의 싹이 텄다.
마침내 1991년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반군(RUF·혁명연합전선)이 내전을 일으킨 후 2002년 공식 휴전하기까지 이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시에라리온 정부군(SLA),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휴전감시단에서 파견한 평화유지군(ECOMOG), 카마조라고 불리는 멘데족 전사들의 부족 민병대, 라이베리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뒤섞여 채굴권을 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들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판 돈으로 탱크와 소총을 사들이고, 소년 병사들까지 동원하여 그 무기로 서로를 죽였다.
특히 96년 반군이 광산 주변의 주민들을 학살한 '싹쓸이 작전'은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랫동안 박탈감에 사로잡힌 반군들 앞에서 무고한 주민들은 처형되거나 손목이 잘리는 것, 둘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했다. 그 때 두 손이 잘린 이스마엘 달라미의 증언은 생생하다. 반군의 어린 병사들은 주민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도끼로 손목을 내리쳤다. 달라미의 손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아들이 서툰 솜씨로 만들어준 반지를 빼내 주머니에 넣은 것이었다.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한 군인이 집어 들고 숲 속으로 던졌다.
당시 아마드 테잔 카바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손을 잡자"고 호소하자 반군들은 오히려 희생자들의 신체를 잘라 대통령궁 계단에 던져놓기도 했다. 여기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평화유지군은 '생물절멸작전'을 벌여 반군으로 의심되면 어린이들까지도 팔이나 다리를 잘랐다. 이렇게 7만5,000명이 죽었고, 2만명이 불구가 됐으며, 500만 인구 중 80%가 난민으로 떠돌아야 했다.
이처럼 만행이 거듭되고 사태가 악화된 것은 다이아몬드가 언제든 무기와 현금으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법 다이아몬드를 판 돈은 전쟁자금이 되기도 했지만, 레바논 과격단체인 헤즈볼라와 알카에다의 돈세탁 통로이자 자금줄이기도 했다. 전세계 다이아몬드 연간 생산량(70억 달러 상당) 가운데 미국이 60%를 수입하고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이아몬드가 황홀한 이미지를 갖고 혼수품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다이아몬드 재벌의 '얕은 속임수'와 집중 매입 정책 때문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가치로만 보자면 다이아몬드는 단단한 물체를 자르는 데만 유용한 것으로 기껏해야 1캐럿에 30달러 정도면 족하다는 것. 하지만 드비어스 사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광고 문구가 성공을 거둔 후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정착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이어 "드비어스 지하창고에서 지난 100년 동안 보관된 40억 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가 공개시장에 판매됐다면 에메랄드나 루비보다 그 값이 싸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이아몬드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한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2002년에야 시에라리온에서는 총성이 멈췄고, 반군들이 만든 정당(RUFP)이 참여하는 선거가 실시돼 카바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았다. 또 영국의 국제인권단체 글로벌위트니스(GW)는 불법 다이아몬드 거래를 감시하고 있으며, 2003년 1월부터는 모든 다이아몬드에 '원산지, 업자 신원, 선적일자' 등을 기록한 공인증명서를 부착하는 킴벌리회합 합의가 본격적으로 발효됐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였다.
저자 그레그 캠벨은 미국 프리랜서 기자로 시에라리온의 내전이 끝나기 직전인 2001년 유엔의 허가를 받아 현지를 방문, 취재했다. 냉혹한 국제관계와 자본주의 기업의 추악한 모습을 추적한 고발장이자 한 사회에 올바른 지도자, 법과 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일깨우는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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