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위헌이라는 일본 법원의 헌법해석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사진) 총리가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했다.고이즈미 총리는 7일 밤 "공식 행사나 국가행사로서 거창하게 참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개인적 신조에 따라 사인(私人)으로서 참배해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내각 총리대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자격으로 참배했다"며 '공적 참배'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던 발언에서 뒤로 물러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조언자인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간사장은 고이즈미 총리와 만찬회동을 가진 뒤 "(야스쿠니에 합사(合祀)돼 있는 A급 전범들을) 분사(分祀)하는 방향으로 신사측과 협의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야마사키 전 간사장이 분사방안을 개진한데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묵묵히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도 나왔던 분사방안은 그러나 유족들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데다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에 정부가 분사를 요구하는 것 또한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아 쉽지 않다.
정치권에서 캐스팅 보트를 잡고 있는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대표는 "종교와 관계없는 새로운 국립추도시설 건설 논의를 다시 살려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불교계 종교단체 창가학회(創價學會)를 기반으로 하는 공명당은 원래부터 신사참배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종전기념일인 8월15일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가 고이즈미 총리의 선거공약이었다. 자민당의 가장 단단한 조직표인 일본유족회는 8월15일을 피해 어정쩡하게 참배하는 것조차도 불만이다. 새 추도시설을 만들어 야스쿠니 참배를 그만둔다면 공약위반이 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월1일 야스쿠니 참배를 마쳐 "한해 한번"이라는 올해분 숙제는 해치웠다. 총리 임기가 자민당 총재 임기인 2006년 9월에 같이 끝난다고 보면 2006년분 참배는 총리 임기 종료 후로 미룰 수도 있다.
문제는 2005년이다. 이 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으로 '한일 우정의 해'인 데다 한일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목표년도이기 때문에 야스쿠니 참배가 불러올 파장은 막대하다.
1985년 8월15일 첫 공식참배를 결행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는 한국,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다음해에 "외교상의 배려"를 이유로 8월15일 참배를 포기한 선례가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법원의 위헌 판단을 계기로 어떤 선택을 해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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