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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커버스토리/감동의 정치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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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커버스토리/감동의 정치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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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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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열매 맺는 정치를 심으세요-4월 15일 투표소에서 만납시다17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이틀째인 3일 뚝섬의 서울숲에선 식목일 기념 나무심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동네 이웃사촌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무 심는 일 이상으로 사람 심는 일이 중요한 때가 아니냐"며 넌지시 선거 얘기를 던졌습니다.

처음엔 모두 "선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깊이 생각해온 문제였던지, 곧 속마음을 조금씩 드러냈습니다.

응봉동에서 온 한 아주머니는 "이젠 정치엔 관심도 없어. 누가 하든 똑같은 데 뭐…"라고 운을 떼면서도 "그래도 투표는 할 계획이고 누구를 찍을 지도 이미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탄핵정국 등을 둘러싼 이념·세대·계층·지역 갈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상황에서 선거 이야기를 잘못 꺼내다가는 주위 사람들과 싸움날 수도 있어 말을 안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그래도 요즘은 (선거판이) 조용하니깐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동네 마다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곳곳에서 갈비굽는 냄새가 진동하며 시끌벅적하던 것이 없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거지요. "생각해보면 참 창피한 짓이잖우? 밥 한끼 사고 표 달라는 놈이나, 주는 놈이나….이렇게라도 해서 선거가 깨끗해지면 다행이지."

행사장에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으며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묘목을 심고 물을 주며 마냥 신이 났습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나무심는 마음을 알게 해주고 싶어 학교도 안 보내고 데려왔다는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위태위태 심어놓은 묘목이 쓰러질라 부지런히 흙을 다지며 그는 무심한 듯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선거철이라고 후보 한 분은 온종일 휴지만 줍고 다녀요.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굽신굽신하고 다니는지…. 그 사람들 선거 끝나고서도 지금의 반만 하면 세상이 좀 좋아질까요? 10년, 20년이 지나도 여기 이 나무들처럼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는 그런 정치를 보고 싶어요."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어린 느티나무에 누군가 붙여놓은 '맑은 정치를 심자'는 푯말이 유난히 눈에 밟혔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도 아전인수를 일삼는 선거판의 이전투구를 나무조차도 꾸짖고 있는 것일까요. 선거일에 꼭 투표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냉소주의는 벗고, 나무를 심는 순정한 마음만 가진 채.

/글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사진 송용석기자 stones@hk.co.kr

■여론조사 백태

2일부터 17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금지됐지만 여전히 여론조사기관들은 비공개 조사를 계속하며 표심의 추이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선거전략의 유효성을 점검하려는 정당 및 후보자, 표밭 흐름을 분석하며 투표결과를 예측하려는 신문·방송사의 의뢰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조사의 최전선에는 면접원이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만든 설문지를 들고 직접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심의 풍향을 체크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귀에 들려오는 반응은 어떤 것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서 일하는 면접원들에게 비친 유권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위풍당당형

탄핵정국 초기 '여론조사 불신론'이 대두되는 등 결과의 진실성을 둘러싼 공방이 오갔지만, 어찌됐든 여론조사에 대해 진지하게 응답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 한결 같은 얘기다. "관심 없다"며 무뚝뚝하게 끊기보다는 면접원들의 질문에 성의껏 응해준다는 것이다.

한 면접원은 "특히 탄핵안 가결사태 직후에는 '바쁘다'며 끊는 이들이 거의 없이 자기 의사를 밝혀 우리도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탄핵 사태가 정치문제와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던 셈이다.

이중 면접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은 '위풍당당형'. 뜸 들이고 망설일 것 없이 자신의 지지 정당 등 소신을 일사천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20, 30대의 젊은 유권자층, 특히 탄핵 역풍 이후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허장성세형

위풍당당하고 거침없는 응답까지는 좋지만 이 중에는 '허장성세형'도 상당수. 지역구에 어떤 인물이 나왔는지도 모르면서, '인물만 볼 때 누가 국회의원감이냐'는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특정 정당 후보를 찍는 부류다. '누가 당선될 것 같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 객관적 판세와 상관없이 오로지 지지후보를 초지일관 밀어부친다. 이들 유권자들은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부류로 '묻지마 지지' 양상도 보인다.

절치부심형

지지 정당과는 별개로 사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에 나온 후보자를 잘 모른다. 응답자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대표적 질문도 '인물만으로 볼 때 누가 국회의원감이냐'는 것이다. 허장성세형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고 솔직 담백하게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 중에서 면접원들을 간드러지게 하는 부류가 '오락가락 절치부심형'이다. "00당을 지지하긴 하는데, 인물로 보면 아닌 거 같거든. 그러니까 찍을지 말지…" "아직 후보를 결정 안 하셨다는 말인가요" "아니, 결정을 하긴 했는데 말야" "그러면 00당 후보를 찍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지 잘 몰라서 말야. 그러니까…." 이런 식의 대화가 주로 오가는 경우다. 때로 이 부류들은 '거여 견제론'과'탄핵 심판론' 중 어느 주장에 더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둘 다 공감한다"고 말해 면접원들을 당혹케 한다.

분기탱천형

면접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유권자들은 바로 분기탱천형.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면접원에게 역정을 내고 화풀이를 하는 경우로, 특히 노년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탄핵 정국 초기에는 "여론조사가 조작된게 아니냐" "니네들도 여당편 아니냐"는 항의성 응답이 속출했다. 때로 아예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정동영 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으로 촉발된 노년층의 반감이 여론조사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는 "그래, 나 나이 많다!" 부터 시작해, 투표의사를 묻는 질문에 "안 할거야, 투표하지 말라며!" 등 분한 감정을 쏟아낸 것. 한 면접원은 "특히 시골 어르신들이 단단히 삐치신 것 같다"며 "정 의장 발언 여파로 우리까지 힘들다"고 말했다.

모르쇠 형

질문마다 "난 암 것도 몰라"로 대응하는 부류. 주로 할머니들에게서 많은 유형이다. 이중 진짜 잘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심을 숨기는 것이라는 게 면접원들의 얘기다. 특히 탄핵 역풍이 거셀 때 '모르겠다'고 응답한 노년층이 많았는데, '그래도 조금 낫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어디냐'고 물으면 마지막에서야'한나라당이야'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는 것. 지지정당을 밝히면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노년층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족 토론형

때로 여론조사 전화를 받고선 즉석에서 가족간 논쟁이 붙는 부류도 있다. 부부간에 지지 후보가 다를 때 생기는 경우. 서로 자신이 설문조사에 응하겠다고 맞서기도 하고, 수화기를 들고선 즉석 논쟁도 펼친다. 일단 응답해놓고선, 가족 토론 후 나중에 조사기관으로 전화를 걸어와 지지후보를 바꾼 경우도 있었다.

/송용창기자

■여론조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안녕하세요, 여론조사회사 입니다. 17대 총선과 관련해 유권자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있는데요,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60살이오" "혹시 집에 30대 분은 없으신가요" "없는데…" "예, 알겠습니다. 뚝∼."

한때 '여론조사 조작설'이 나돌았던 사유다. "60대라고 하면 묻지도 않고, 20∼30대만 찾다가 전화를 끊어버린다""주변에 물어보면 ▽▽▽당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이 20∼30% 밖에 안되는데 그 당의 지지율이 그렇게 높게 나오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때문에 "노년층은 왕따시키는 여론조사"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등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 만큼 불신도 만만찮게 증폭됐다. 과연 그럴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기자가 일일 조사원으로 나서봤다.

노년층을 배제한다?

대표적 오해는 "노인이 받으면 전화를 끊어 노년층을 배제한다"는 불만. 사실 여론조사의 신뢰를 측정하는 바탕은 표본추출의 적정성이다. 보통 전국 단위 여론조사의 설문 대상자는 1,000명 정도. 이 표본은 연령과 성, 지역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비례에 따라 정확히 할당된다. 전문 여론조사기관치고 표본에서 '장난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공신력을 잃는 것은 존립근거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조사는 일반 유선전화를 통해 이뤄지는데, 집에 머물고 있는 노년층의 할당분이 가장 먼저 완료된다. 때문에 전화 접촉이 상대적으로 힘든 20, 30대를 찾는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지는 것이다.

대답을 유도한다?

조사 과정에서 질문 배치 순서에 따라 다른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정치부패에 대한 견해를 물은 뒤 '부패청산을 주장하는 00정당을 지지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지지도가 높게 나온다.

이런 우려 때문에 여론조사기관들은 결과와 함께 반드시 설문 문항도 공개한다. 문항에 편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 문항과는 별개로 면접원이 의도적으로 대답을 유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론조사기관들은 감청직원을 별도로 두고 있다. 감청 직원들이 면접원의 통화를 수시로 감청하며 유도성 질문을 하는지 점검한다.

면접원들이 허위로 작성한다면?

면접원들은 조사기관들이 임시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로 대부분 가정주부들이다. 따라서 면접 건수당 급료를 받기 때문에 자칫 허위로 기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때문에 조사기관들은 반드시 사후점검 과정을 거친다. 설문자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자료가 맞는 지를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대개는 설문자의 30%, 중요한 조사일 때는 100% 사후 확인작업을 진행한다.

단순 지지도결과가 절대적 여론?

그렇다고 해서 여론조사 결과를 과학적 진리로 곧바로 받아들이는 것도 맹신이다. 언론에 공표되는 단순 지지도 결과가 여론의 동향을 100%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실제로 노년층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숨기거나, 사회적 여론이 거셀 경우 소수의견이 무응답층속에 숨어든다고 말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들은 총선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인물적합도'나'당선가능성' '지난 투표 성향' '출신지역' 등 다양한 변수를 파악해 무응답층의 성향을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변수에 대한 객관적 잣대가 없고 조사기관마다 해석이 상이하기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 자료는 언론에 공표되지 않으며 참고자료로만 활용된다. 응답자가 조사기관을 믿고 성실하게 답변한다는 전제가 없는 한 여론조사결과는 진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예측과 결과가 다르다고 조사가 조작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여론조사기관 책임자들의 머리엔 쥐가 나겠지만….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이미지메이킹/출마지역에 맞게 다시 태어난다

서울 A지역에 출마한 B후보. 전문직 종사자로 연륜을 쌓은 후 주위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정치감각으로 정치 신인 한달여만에 어언 '선량'의 품새를 갖췄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을까.

후보진영은 우선 서민층이 대부분인 선거구 성격을 감안해 '젊고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면서 유권자의 삶과 정서를 체득한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첫사랑부터 사회 경력에 이르기까지 개인적 이력을 시시콜콜 담았고, 저녁마다 짬을 내 후보가 직접 게시판에 답글을 단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후보가 직접 육성을 밝히는 것이 얼굴을 보고 손을 잡는 것 이상의 친밀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프로필을 보자. 후보가 좋아하는 음식은 원래 회, 청국장, 해물스파게티 등. 하지만 참모진은 이중 회를 지웠다. "회라뇨? 서민의 음식은 아니죠." 좋아하는 연예인은 이효리, 애창곡은 이승철의 '네버엔딩스토리'로 설정했다. 역시 젊은 유권자와 공감대를 넓힌다는 전략에 따라 선택됐다.

그의 홍보물 촬영 때는 도전과 패기를 상징하는 청색 셔츠, 다소 젊어보이는 가는 줄무늬 셔츠가 동원됐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안경을 바꾸고, 얼굴 주름은 컴퓨터 작업으로 지웠다. 물론 전문적인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이미지 메이킹은 후보 부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 특성상 "힐러리형은 절대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참모진은 후보 부인에게 "가급적 말을 아끼고, 명품 브랜드는 절대 입거나 신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다못해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도 "수행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게 좋다"는 점까지 논의됐다. 후보 부부는 식당 주인에게 "물 좀 더 달라"고 할 때도 "아저씨 물 좀 주세요"가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부르도록 조언을 들었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말에 처음에는 쭈빗쭈빗했던 B후보는 요즘 이 이미지에 자신이 흠뻑 빠져들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부정선거 감시단 24시

"가장 큰 적은 상대 후보가 아니고 선거법입니다. 정신을 잠시만 놓으면 낭패 보기 십상이라니까요."

17대 국회의원 공식 선거전이 한창인 요즘, 인천 남동구 간석동 간석시장에서 운동원 두 명과 단출하게 선거운동을 펼치다 마주친 한 후보의 넋두리는 '철의 법칙'으로 자리잡은 선거법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한다.

후보자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은 선관위가 운영하는 부정선거감시단. '선감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전국적으로 1만3,000여명에 달하는데,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출동, 허튼 '꿍꿍이'가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핀다. 여성이 90% 이상인 '선감단'의 활약상을 보기 위해 인천 남동구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단원들을 따라 나섰다.

전국 1만3,000여명, 대부분 여성

"뭐라고요?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니 말이 됩니까. 어제 밤까지만 해도 만수3동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요. 아니 사무실에서 모르면 누가 알아요. 정말 이러실 거예요."

오전 9시30분, 전화를 잡고 언성을 높이는 A후보자 전담반 반장인 주부 지모(35)씨. 후보자 위치를 파악하느라 아침부터 진땀을 뺀다.

"세 명으로 이뤄진 저희 반은 후보자를 따라다니며 불법 선거운동 여부를 감시하는 '후보자 전담반'이에요. 그런데 아침마다 후보자 위치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아요. 법을 어기려는 건 아니라면서도 우리가 옆에 있으면 불편한지 썩 내켜 하지 않아요. 선거사무실에서 후보자 일정을 모른다고 발뺌하면 '뺑뺑이' 도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지요."

캠코더와 녹음기를 챙겨 차에 올라타는 세 사람. 일대 식당가와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길을 천천히 돌아봐도 A후보는 안보이고 어깨 띠를 두른 B후보만 눈에 띈다. 휴대폰을 들어 B후보 전담반장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에요? 아니, 그 분 지금 K은행 사거리에 있어요. 운동원 두 명이랑 다니는 거 보니깐 별 일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빨리 와."

지씨는 후보 '잡는' 일이 어려워서 그렇지, 후보 전담반이 실제로 적발하는 불법 선거운동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선거법을 위반해 고발되거나 망신당했다는 보도가 워낙 많이 나가서 대놓고 불법 선거운동을 펼치는 용감한 후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보자 사무실에 상주하는 '정당 사무소반'도 마찬가지다. "뭐 감시할 게 있어서 죽치고 있냐는 핀잔까지 들어가면서도 종일 앉아 있어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들이 드나들거나 수상한 전단지가 없는지 확인하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곳 외에 몰래 다른 사무소를 차리지 않았냐, 하는 거예요. 그걸 잡아야 하는데…."

정당 사무소반 김모(40)씨는 3월 말 수상한 사무실이 있다는 제보를 듣고 8시간 동안 건물 앞에 차를 대고 몰래 숨어 캠코더를 들고 잠복했던 경험이 있다. 후보자 사무소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이 드나들면 포착하려는 시도였는데 결국 허위제보로 판명, 고생만 했다며 웃는다.

눈치 못 채게 하는 '작전' 필수

불법 선거운동이 있을 법한 어두운 구석을 찾아 다니는 것은 '지역 순환반'의 몫. 이 날도 지역순환반장 이모(37)씨와 단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네? 제보가 들어왔다고요? 아…. W횟집에서 명함을 돌리는데 수상하다는 거죠? 알겠습니다. 빨리 가볼게요."선감단 사무소로 들어오는 제보를 받아 현장을 덮치는 일은 늘 긴장된다. 물론 완장과 이름표를 차고 '선감단 출두'를 외치면 다들 꼬리를 감출 터. 제대로 된 전략은 필수다.

이 날도 식당 부근에 차를 대고 작전을 짠다. 동네 부녀회 등 활동이 많아 얼굴이 알려진 반장은 차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두 명만 들어가기로 한다. 방금 점심 식사를 해 부담되긴 하지만 할 수 없이 식사도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주머니에 소형 카메라도 숨기고 플래시를 꺼둔다. 급히 달려온 덕분에 다행히 명함을 돌린다는 감색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아직 있다.

알탕 두 개를 시키고 태연히 식사를 하자니 아니나 다를까, 문제의 그 사람이 다가와 명함을 건넨다. 일단 밥 값을 내주겠다거나 후보자 홍보사항이 적힌 전단지를 돌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안녕하세요. 요 앞에 회계사 사무실을 열었거든요. 인사차 왔습니다. 하하…."

밥은 대충 먹고 태연스럽게 인사하며 건네는 명함을 챙겨 나오는 두 사람. 나오면서 창 밖에서 한 단원은 옷 매무새를 고치는 척하고 다른 한 단원은 그 뒤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현장을 찍는다.

"자, 보세요. 회계사 사무실 열었다는 명함이지만 이 아래, 'C후보 조직부장'이라고 써있잖아요. 애매한 직함이긴 하지만 이런 명함을 돌리는 것도 불법입니다. 이 후보 오늘 진땀 좀 빼겠는데요."

동네 잔치·모임마다 꼼꼼히 감시

선감단원들의 수첩에 가족 생일보다 더 크게 쓰여 있는 것은 동네 잔치 일정이다.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요주의 포인트'여서 경로잔치부터 부녀회 모임까지 일일이 찾아간다.

"오늘은 M교회에서 무료 점심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가보려고요. 목사님께서 3년 동안 매주 금요일 해오셨던 일이라니 별일 없겠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불순한 세력이 물을 흐려놓지 않는지 보러 가야죠."

주부 김모(39)씨는 현장에 자연스럽게 잠입하기 위한 준비를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감시하러 가겠다고 하면 대접받는 노인 분들이나 좋은 일 하시는 목사님이나 기분 좋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아예 오늘은 세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신청했어요. 별일 없는 분위기지만 끝까지 지켜 봐야죠."

김씨는 단원들을 당황케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토로한다. 분명 정당 관계자가 밥값을 내고 갔는데 식당 주인부터 손님들까지 조금씩 돈 걷어 먹었다고 주장하거나 후보자 외의 사람이 명함을 돌리는 현장을 적발해 보고를 올렸더니 주운 명함을 재미삼아 돌렸다고 강변하는 것. 이처럼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가 가장 답답하다.

몰래 사진을 찍었는데 결정적인 사진만 안 찍히거나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선거법 위반 확인서에 죽어도 서명 못하겠다는 운동원들도 이들을 피곤하게 한다. 휴일 없이 일하는 이들의 보수는 식대를 포함해 하루 3만원. 실적이 좋은 반에게는 약간의 포상금이 주어지긴 하지만 큰 액수는 아니다.

선관위는 선감단과 별도로 비밀단속반도 운영한다. 남동구 선관위 김세환 지도담당관은 "선관위 직원의 지인으로 구성, 가족도 모르게 활동하는 비밀요원들은 담당 직원을 통해서만 몰래 연락할 뿐 모임을 갖거나 직접 나서는 일이 없다"며 "선관위에서 갖고 있는 명단도 이니셜로만 돼 있어 실제로 이들이 누군지는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선거 캠프 내부에도 잠입해 있는 이들은 직접 단속을 하기보다는 위법 내용을 발견, 제보하는 선에서 활동합니다. 접수된 사항을 바탕으로 선감단이 조치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죠. 후보님들,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깨끗이 하지 않으시면 두고두고 고생 좀 하실 겁니다."

/글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선감단 알고보니…

2000년 개정된 선거법은 시·군·구 선관위별로 민간인으로 구성된 부정선거감시단(선감단)을 조직해 운영하도록 했다. 이번 총선은 2000년 16대 총선, 2002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 이은 네 번째 활동이다. 선관위별로 50명 이내의 단원을 두도록 했던 것을 이번 총선부터 5명이 늘어난 55명 이내로 늘렸으며 이 중 25명 이내로 구성되는 정당 추천인은 다른 후보자 캠프의 부정선거운동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선감단은 활동 내용과 영역에 따라 후보자전담반, 지역순환반, 야간반, 선거사무소반, 본부반 등 다섯 개 반으로 나뉘어 투입된다.

'반장'을 맡은 운영위원은 12월초, 나머지 단원들은 2월초 인터넷과 생활 정보지 등을 통해 모집해 3월20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식대 포함 3만원의 일당을 받으며 적발 건수가 많거나 활동이 활발하면 하루 1만∼5만원 정도의 성과급을 추가로 받는다.

■100여곳 정치홍보 대행사

서울 여의도 K빌딩에 들어있는 정치홍보 전문 S사 사무실. '선거는 과학'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이 곳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을 위한 당선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몸만 피곤할 뿐, 별로 신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10년 넘게 전문적으로 정치홍보를 해오고 있는 이 회사의 J(45) 대표는 "이번 총선은 정치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기이지만 여느 선거와 달리 정치홍보 대행사로서는 가장 재미없는 선거"라고 말했다.

그가 꼽는 이유는 크게 2가지. 하나는 '대통령 탄핵' 이슈가 총선의 메가톤급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후보자 개인의 인물됨과 정책을 비롯한 모든 이슈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것. 탄핵공방의 그늘이 워낙 짙다 보니 '묻지마 지지' 혹은 '묻지마 반대'만 판치고 통상적인 정치홍보 방식으로는 판세를 변화를 꾀하기도 힘들다. 다른 하나는 선거법 개정으로 과거와 같은 '돈 선거'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면서 홍보쪽도 위축됐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은 100개를 넘는 크고 작은 다른 정치홍보 대행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특히 신인 후보의 경우 홍보와 이미지메이킹 전략이 선거운동의 50%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H홍보대행사는 경기 서남부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K(47)씨에게 아주 색다른 선거 유세를 처방했다. 탄핵 후폭풍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5%대로 추락하자 후보진영은 기존 방식의 선거운동을 포기하고 대신 후보자가 14일간의 유세 기간 내내 시장과 공장, 광장 등 '3장(場)'만을 돌면서 유권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방식을 채택했다.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말하는' 유세에서 의견을 '듣는' 유세로 전략을 180도 바꾼 것이다.

H사 관계자는 "어차피 일상적인 선거 유세 방식으로는 낙선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배수진을 친 선거 홍보를 권했다"고 말했다.

E홍보대행사도 서울에서 출마한 한 입후보자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특이한 홍보방법을 추천했다. 입후보자를 비롯해 아들 4명까지 모두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5부자 모두 예비군복을 입고 전철역 등을 돌아다니며 전단을 나눠주도록 조언한 것이다. 현재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상대 후보가 병역을 필하지 않은 점을 공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외에도 낡은 정치를 들러 매치겠다며 유도복 차림으로 유세하는 후보, 쓰레기를 치우는 심정으로 정치하겠다며 차량을 쓰레기차로 개조해 유세에 나서는 후보 등 어떻게든지 유권자관심을 끌려는 후보자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눈물겹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대통령 탄핵' 이슈 때문에 다른 이슈가 묻혀버린데다 강화된 선거법으로 손발이 묶인 감이 없지 않다"며 "그럼에도 어떤 홍보 전략을 구사하느냐는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 '이벤트식'의 홍보만으로는 유권자 표심을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정말 달라진 선거운동 이모저모

서울 A후보 사무소의 한 운동원. 다음날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후보와 운동원의 우비를 준비하러 급히 심야에 문 연 할인마트를 찾았다. 얼마 후 그에게서 걸려온 다급한 전화. "우비가 모두 노란색밖에 없어요!" "어, 노란 색으로 맞춰입으면 불법인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색으로 사 와." "지금 문 연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우비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텐데…. 정말 미치겠구만."

선거운동이 중반을 넘어섰지만 분위기는 과거와 크게 다르다. 운동원들 사이에 환호와 야유가 오가던 합동유세도, 율동과 노래로 유권자를 '호객'하는 띠 두른 운동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술 한잔 걸치고 잔칫집마냥 떠들썩한 분위기가 없으니 "선거하는 맛이 없다"고 섭섭해 하는 이들도 있다. 어깨띠, 명함 돌리기 등은 후보만 할 수 있고 동반 운동원, 확성기 수도 엄격히 제한된다. "후보 혼자 하는 선거운동"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인터넷과 전화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오프라인 선거운동 이상으로 온라인 캠페인이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재미 없다!" 흥 없는 선거판

돈줄을 틀어잡기 위해 까다롭게 규정된 선거법과, 초장부터 포상금 풀며 강력 단속을 실천하고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덕분에 선거운동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잇따르고 있다.

유급 선거운동원이 아니면 밥도 얻어먹을 수 없다. 종일 고생한 자원봉사자에게 끼니마저 알아서 사먹으라니 우리네 인심으론 몹쓸 짓이다. 하지만 다과는 된다. 그럼 서울 B후보 사무실에서 준비한 다과 식탁에 없는 건 뭘까? 보기는 단팥빵, 김밥, 라면. 정답은 라면이다. 이건 식사로 인정돼 불법이다. 한마디로 국물 있는 건 밥으로 분류된다는 얘기다.

후보 일행이 5명을 넘으면 안되고 자원봉사 운동원들도 3명 이상 함께 다닐 수 없다. 그러면 둘씩 다니던 같은 후보 운동원들이 길에서 만나면 어떻게 되나? C후보의 선거운동원이 부정선거단속반에 물었다. "얼마나 거리를 띄워야 따로 다닌 겁니까?" "글쎄요, 거리 규정은 따로 없는데…."

"돈이 안 들어 정말 좋다"는 토로도 나온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두번째 도전하는 한 후보진영의 관계자. "지난 선거땐 자기들끼리 밥 사먹고 영수증 내미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엄두를 못낸다. '50배 벌금'이 무서워서다. 지난 선거와 비교해 업무가 반으로 준 느낌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할 테니 밥값 달라"는 뻔뻔한 브로커에겐 아예 "제가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맞불을 놓는다. 또 다른 선거사무소측은 유세차 앰프에 거금 1,000만원을 들였다. "어디 도통 돈 쓸 데가 있어야지." 자연히 동원되는 조직은 사라지고, 인터넷이나 지역모임에서 활동하는 자발적인 진성 조직만 남는다.

"그래도 선거는 뜨겁다" 보이지 않는 운동

분위기가 안 뜬다고 선거전이 차가우랴. 후보들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유권자를 만난다.

서울 강북 한 후보 진영에서 전화홍보원으로 일하는 이영순씨."전화를 해보면 한번에 반응을 알 수 있다. 오래 듣지도 않고 '○○당이요? 걱정 마세요, 찍을 테니까요'하거나 '난 안 찍어요'라는 사람들은 확고한 지지층이거나 반대층이다. 오래 매달려야 할 사람은 '글쎄요'다. '후보를 알고 계십니까''정치철학은 무엇입니다''약력을 보내드릴께요' 등 정해진 멘트를 전달한다. 이런 식으로 며칠간 지역을 훑어 6만5,000세대의 성향이 드러나면 다음엔 부동층만 집중 공략한다." 이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사무소 한켠에 마련된 전화홍보실에서 다른 19명의 운동원과 함께 핸즈프리 이어폰을 꽂고 전화를 돌린다.

중요 유권자에겐 후보가 전화를 한다. 유세 장소를 옮기는 차 속에서 틈틈이 수행원이 '다발'로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돌린다.

인터넷 역시 강력한 홍보수단이다. 홈페이지 방문자는 상당히 자발적이어서 후보보다 열성적으로 반박에 나서는 지지자도 있다. 너무 노골적으로 나서면 '알바'(특정 정당 지지자로 고용돼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아르바이트생)로 찍힌다.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는 어떻게 확보할까.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유선전화다. 하지만 휴대폰 번호, 메일 주소는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결국 선거운동원이 모두 동원돼 각종 모임과 동호회를 훑는 수밖에 없다. 한 선거운동원은 발품을 팔아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에 적힌 휴대폰 번호 1만5,000개를 확보했다. 하지만 그는 "문자메시지는 법적 제약이 커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선거 왕따' 도서벽지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들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도대체 누가 후보로 나오는 지 알아야 투표를 할 거 아입니꺼?"

후보진영과 유권자와의 '부적절한 접촉'을 완전 차단한 새 선거법으로 인해 곳곳에서 "우리 지역 후보를 모르겠다"는 유권자들의 불평이 많지만 특히 섬마을 주민들은 선거에서 거의 왕따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던 특수 유권자였지만 이번에는 그런 대접은커녕 심지어 후보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선거를 해야 할 지경에까지 내몰렸다.

3일 오전 경남 통영시 한산면 한산도. 16대 총선까지만 해도 후보자 등록과 동시에 선거유세가 시작되고, 각 후보들이 제작한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었지만 이번 총선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마을 어디를 가도 플래카드 한장 찾아보기 힘들다. 흔하디 흔한 확성기를 통한 유세장면도 사라졌다.

선거를 전후해 알게 모르게 행해지던 향응대접도 찾아볼 수 없다. 창동마을에서 만난 한 음식점 주인은 "아무리 불법이라고 해도 16대 선거때만 해도 각 후보진영 선거운동원들이 공공연하게 마을 주민들을 모아 식사대접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며 "선거특수를 누리지는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는 깨끗해진 느낌이 확연히 든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선거운동 신고역시 뚝 끊어졌다. 한산면의 한 공무원은 "예전에는 곳곳에서 상대방 후보의 불법선거운동 고발이 들어왔지만 올해는 단 한건도 신고된 바 없다"며 "이제야 정치판이 제대로 잡혀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반길 만한 것도 아니다. 현재 한산도의 유권자는 2,500명 남짓. 창녕·고성 선거구의 전체 유권자 15만명의 2%에도 못미친다. 반면 한산도를 가기 위해서는 1시간30분 간격으로 있는 여객선에 차량을 싣고 들어가야 하는데다 마을이 띄엄띄엄 흩어져있다. 오후 4∼5시면 뱃길이 끊긴다는 것도 문제점. 후보자 입장에서 하루를 꼬박 투자해도 효과적인 선거운동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 당연히 선거운동 순위가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통영에는 한산도 이외에 욕지도, 사량도 등 유권자가 2,000여명 수준인 고만고만한 섬들이 여럿 있지만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주민 김의준(61)씨는 "섬마을 한 곳을 방문하는 시간이면 서너 곳의 면을 돌아볼 수 있는 데 후보들이 굳이 이곳까지 오겠느냐"며 "선거공보와 인쇄물에 의지, 인물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달라진 선거법에 대한 문제점을 토로했다.

통영선관위 관계자는 "이 지역출신 후보는 당연히 자신을 밀어줄 거라고 판단, 유세를 오지 않고, 다른 후보는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역유세를 포기하면서 주민들이 후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힘이 든다"며 "노인들이 많은 섬마을이라 인터넷에도 익숙하지 못해 소외받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산도(통영)=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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