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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학벌주의 타파" 실천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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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학벌주의 타파" 실천이 문제다

입력
200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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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6일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아니 발표하다 중간에 취소했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교육부 차관이 발표하는 중에 장관이 나서서 최종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물러섰기 때문이다. 중대한 국정 과제를 놓고 벌어진 해프닝이어서 실망이 컸지만 흘러나오는 뒷얘기 역시 당혹스럽다.교육부 안을 놓고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처 조정도 마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책의 내용을 떠나 일 처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졸속의 티는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비록 취소되긴 했지만 그 일단이 드러난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의 내용에 대해서 몇 마디 하자. 먼저 대책의 큰 방향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예컨대 대학 서열 구조 개선 및 지방대학 육성, 공공·민간 분야에서 능력 중심 인사관리 시스템 정착, 불합리한 법·제도·관행 해소,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은 학벌주의 타파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거나 각 부처에서 준비 중인 안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정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국립대학 공익법인화는 '중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업들한테는 학벌 위주의 고용 관행을 개선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의식개혁 운동은 '시민단체와 함께 추진하겠다'고만 했다. 이쯤 되면 신중한 것이 아니라 느슨한 것이다. 과연 학벌주의 극복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국가고시의 지방대 출신 채용목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띌 정도다. 그 외에 지방대 육성, 국립대 간 연합대학 추진, 대학 간 상호 교류 등도 이미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을 담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학벌주의는 그 뿌리가 너무 깊고 넓게 퍼져 있어서 쉽게 치유되지 않을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8개 부처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이 '학벌주의 극복 민관 합동 기획단'을 구성해 1년 넘게 준비해 온 종합대책(안)으로는 너무 미흡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설프게 윤곽이 드러난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은 좀더 충실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행정·기업·문화·교육·언론계 전체에 강고하게 뿌리내려 있는 학벌주의와 부당한 기득권 체제를 혁파하자는 것이기에 웬만한 의지와 프로그램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고 기업과 시민사회의 협조를 끌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한다.

공감대가 확보된 후에는 범정부적으로, 나아가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적극 대처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절대 교육 문제만이 아니며 따라서 교육부만의 일도 아니다. 교육정책적 대응으로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교육 정책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사회 정책 처방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천이 문제인 만큼 중장기와 단기 처방을 포괄하는 추진 일정도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와 국가의 백년대계를 다시 설계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뒷받침된 범정부적 실천과 시민사회 차원의 혁신 노력이 체계적으로 결합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다시금 학벌주의 타파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서둘러 보여줘야 할 것이다.

/홍덕률 대구대 국제사회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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